"동북아 물류중심" 정책비전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중심의 경제발전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유럽의 네덜란드나 동남아의 싱가포르와 같은 지역물류센터 역할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실은 비전과 동떨어지고있다. 해양에서부터 항공,내륙에 이르기까지 물류경쟁력의 선진화는 커녕 부산항의 경우 오히려 동북아 경쟁반열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인천공항도 문을 연 지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허브공항화'는 구호뿐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당시 부르짖었던 '물류중심지화'는 어느틈에 '경제중심지화'로 바뀌더니 기획과 집행기능도 대통령 직속의 '동북아 경제중심추진위원회'와 재경부의 '경제자유구역추진기획단'으로 나눠져 혼선을 빚는 등 정부마저 중심을 못잡으면서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부산항의 위기=제3국간 화물인 환적화물이 지난 7월 개항 이래 최초로 전년 동기보다 1.0% 준 데 이어 국내 수출입 화물을 포함한 전체 컨테이너 물량도 9월 사상 최초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9월 부산항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78만1천2백66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2만9천3백97TEU보다 5.8%(4만8천1백31TEU) 줄었다. 부산항의 화물량은 지난 5월 8.4%로 둔화된 뒤 10.5%(6월) 5.2%(7월) 2.2%(8월)로 증가세가 줄어들다 9월 급기야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환적화물도 지난 7월 처음으로 감소한 데 이어 9월에는 6.9%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세계 3위 항만이었던 부산항은 올 하반기 들어 중국 상해에 이어 심천항에까지 추월당해 올 연말이면 세계 5위로 주저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연말까지의 화물누계처리실적이 지난해보다 약간 높게 유지되겠지만 내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 같다"며 부산항의 항만효율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지않으면 3류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기의 원인은=중국 항만의 급속한 부상과 정부의 방만한 대응으로 부산항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배가 중국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해양부의 용역을 받은 미국계 컨설팅업체 아더 디 리틀(잠정보고서)에 따르면 부산항과 광양항의 물류관련 임금수준은 상해항 대비 4∼10배에 이르고 항만이용료도 15%가량 비싸다. 노사관계의 안정성도 상해의 5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화물연대의 잇따른 파업은 이 같은 부산항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추락시켰다. 부산항의 경쟁력은 선진 IT기술에 입각한 서비스와 조밀한 교통망에 있었으나 두 번에 걸친 화물연대 사태로 이런 서비스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세계 2위의 초대형 정기선사인 MSC사가 1척을,차이나시핑이 3척을 중국으로 빼내간데 이어 이달에는 이스라엘의 짐라인이 1척의 기항을 포기하는 등 올 들어 전체 기항선수의 10%가 넘는 5척이 부산항을 포기했다. 반면 경쟁상대인 상해항은 꾸준히 부산항의 환적화물 수요를 흡수,올 상반기 물동량이 35.1%나 급증했다. 또 천진 청도 대련 등 북중국 항만의 물동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즉 부산항의 주요 손님이던 북중국 화물이 중국항만의 개발과 함께 자체적으로 소화되고 있는 것. 특히 상해항은 양산 신항 5개선석이 내년 말에 완공되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20년간 52개 선석을 건설,3천만 TEU를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항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상해 양산항이 완공되면 부산항을 이용하는 중국 동북3성(천진 대련 청도)의 환적화물이 줄면서 부산항의 물동량이 최대 28%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모두 15조6천억원을 투입해 2011년 3천만TEU 유치를 목표로 건설해온 부산신항과 광양항은 유휴부지로 남아돌 가능성이 있다. ◆탁상공론뿐인 정부대책=해양부는 최근 부산항이 흔들리자 2005년 수정 예정인 항만개발계획을 1년 앞당겨 재검검키로 했다. 또 다국적 물류기업 유치,항만 배후단지 개발,서비스 개선 등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적인 전략,즉 '항만을 만들어놓으면 화물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고 있다. 해양부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짓는 것보다 매년 화물이 크게 늘어나 항만시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서비스를 개선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며 안이한 문제인식을 드러냈다. 부산=김태현·김현석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