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는 한·일 문화사에 획을 그을 만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심수관,이삼평,사카 고라이자에몬,다카토리 하치잔 등 일본 10대 도예가문 중 4대 가문의 후예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들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손들로 한국 도예전에서 자리를 함께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역사적 행사의 주최는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금호문화재단이 맡았다. 박 명예회장은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과 한국기업메세나(Mecenat·고대 로마시대 문화활동에 지원을 많이 한 재상의 이름)협의회 회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간단치 않은 이력만큼이나 그의 문화예술 사랑은 남다르다. 그 중에서도 박 명예회장의 '클래식 사랑'은 특히 정평이 나 있다. 한남동 자택에 40평 규모의 콘서트홀(문호홀)을 두고 리비아손 이유라 권혁주 손열음 등 유망 연주자들의 연주회를 감상할 정도다. 금호문화재단은 40만달러를 호가하는 과다니니,마기니 등 세계적 명품들을 이들에게 무상 대여해주고 항공기 탑승 우대증(Free Ticket)을 제공하고 있다. 작년 11월 말 해단한 금호 현악 4중주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실내악단으로 1990년 창단 이후 70개국 80개 도시에서 공연,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대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호그룹 하면 주력 기업인 아시아나항공보다 금호미술관이나 금호아트홀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사내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금호의 사회공헌활동의 첫걸음은 사실 금연 캠페인이었다. 흡연의 폐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86년부터 시작된 금연활동이 91년 '금호 전사업장 완전 금연'으로 이어졌고 '세계 최초 기내 금연 실시'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 밖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성희롱 방지지침'을 95년 제정,전 계열사에 적용키로 한 것도 정부와 기업을 통틀어 금호가 첫 사례다. 이같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박 명예회장 스스로는 "미련한 투자"라고 평가한다. 회계장부만으로 따질 경우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호문화재단이 음악·미술·장학사업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매년 35억원 안팎에 이르지만 수익란은 항상 공란이다. 대신 금호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브랜드 이미지'를 얻었다. 작년 3월 문화관광부가 메세나와 공동으로 일반인 4백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금호=클래식 음악''금호=지적이고 세련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