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칸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결렬로 끝난뒤 2005년 1월1일로 정해진 시한내에 무역개방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다자간 협상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협상 탈퇴까지 거론하는 등 WTO 체제가 중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또 미국도 유럽과 개발도상국들이 투자촉진과 농업 부문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궤도를 이탈했다고 양측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협상방해 세력에 대한 응징을 시사하고 쌍무 협정을 통한 문제해결을 언급하고 있어 다자협상체제가 실종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파스칼 라미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브뤼셀로 귀환한 16일 교역상대국들과 개별협상을 추구하는 문제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미 집행위원은 "나는 아직도 다자주의를 확고하게 신뢰하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변한다면 EU가 다자주의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EU 회원국과 유럽의회가 이 문제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미 집행위원은 이와 관련, 14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WTO를 개편하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미 미국은 WTO의 표결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각 회원국의 무역 비중에 따라 표결권을 달리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으나 WTO 대다수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EU의 이런 입장표명과는 별도로 로버트 졸릭 미 무역대표도 15일 WTO내 협상진전상황을 주시하면서 몇몇 개별국가와 쌍무 무역협상을 벌이는 한편 지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게다가 찰스 그래슬리 미 상원 재무위원장은 "각국이 이번 회의에서 취한 입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현재진행중인 상황을 토대로 향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국가가 어느 곳인지 평가할 것"이라는 엄포까지 놓고 있어 사태가 더욱 악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맞서 아프리카 개도국들은 `협상탈퇴 재고'로 반발하면서 자칫 칸쿤 각료회의 결렬이 향후 협상을 기대해 보지도 못한채 곧바로 WTO 다자협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마저 대두되고 있다. 아프리카 연맹(WU)의 비제이 마크한 무역.산업.경제담당집행위원은 16일 "칸쿤회의는 가난을 없애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선진국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WTO와 같이 일을 해야할 지에 대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는 빈국의 농부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선진국의 농업보조금 문제가 이번 칸쿤회의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며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전세계 잠재의식에 있는 흉터같다고 말하지만 흉터를 치료할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처럼 칸쿤 협상 실패로 나타나고 있는 후유증이 아직까지 WTO 실패를 선언할 지경까지 악화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한내 협상타결은 기대하기 어려워 졌다는게 관련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아직까지 WTO 협상이 완전히 사망상태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환자실에 들어갈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는 라미 EU집행위원의 평가는 현재의 어려운 사정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inn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