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한국'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봉착했다. 우선 뉴라운드 협상 차질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무역상대국인 선진국들의 보호 무역주의 성향이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역주의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껏 단 한건의 FTA도 발효시키지 못하는 등 국제 무역의 신질서 형성과정에서 소외돼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방형' 대외통상 전략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농민단체와 영화계 등 이해집단의 반발에 밀려 한ㆍ칠레 FTA와 한ㆍ미투자협정(BIT)을 표류시키는 등 리더십을 상실한 모습이다. ◆ 교착상태의 개방 협상 정부는 한ㆍ미 BIT협정이 체결만 되면 32억5천만달러(약 3조9천억원)의 외국인 투자 증가 및 대외 신인도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 아래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BIT 타결을 위해 필요한 '스크린쿼터(1년중 1백46일은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한 규제)' 폐지에 대해 영화업계가 강력히 반발, 논의 자체를 중단시켜버렸다. 한ㆍ칠레 FTA 역시 지난 2월 협정 체결 후 7월에 비준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농민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머뭇거림속에 석달째 계류중이다. FTA 비준이 지연되면서 피해가 가시화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지난 2월 EU와 칠레간 FTA가 발효된 이후 5월까지 칠레의 총수입액(55억달러)중 EU로부터의 수입액이 3천만달러 늘어난 반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9백40만달러 줄었다. ◆ 강력한 리더십 필요 양수길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는 "자원 빈국인 한국이 살 길은 수출밖에 없다"며 "강력한 리더십 아래 이해 당사자들에게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시장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 시장개방 논의 과정에서 농업분야에서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농정(農政)분야에서 상업농 육성책 중심의 구조조정과 피해 농민을 위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수출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기술 및 설비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경기침체와 잦은 노사분규로 투자활동이 지연되거나 포기되고 있다"며 "국내외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킬 일관된 경제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 신성장 산업으로 수출시장 넓혀야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높아지고 있는 환율하락 압박을 신성장 산업 발굴과 이에 대한 투자로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은 "정부가 수익성이 한계에 달한 중소 수출기업들을 의식해 달러당 1천1백70원선에서 환율방어를 계속하고 있다"며 "단기적인 환율 방어뿐 아니라 기업들이 신성장 산업에 투자해 시장을 넓힐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마련해 주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