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총재로서 1990년대 유럽 통화정책을 주도했던 한스 티트마이어 전 총재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일하러 가자'를 모토로 내건 '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 전파모임' 회장인 그는 "독일사람들은 이제 일을 해야 한다"며 "독일이 시장경제로 되돌아간다면 10년 후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거듭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 독일 경제의 실패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독일은 여전히 국가신용도가 AAA급 국가이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급증하는 재정적자는 특히 구조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문제다." -독일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이유는 뭔가. "우선 통일 후유증을 꼽을 수 있다. 옛 동독지역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서독지역 주민의 90% 이상이다. 그러나 동독지역 기업들의 생산성은 서독지역의 65%에 불과하다. 이 격차가 재정자금과 사회보장금으로 메워지고 있다." -옛 서독지역은 문제가 없나. "너무나 많은 복지제도가 남발됐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노동비용을 지급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받는 수입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 격차가 너무 커졌다." -독일의 사회복지제도는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있었다. 최근들어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EU(유럽연합)가 출범하면서 각국의 비용이 투명하게 공개됐다. 과도한 세금과 사회보장, 인구구조 변화와 통일비용 부담은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기업들의 투자도 부진한데. "독일 마르크화(貨)의 장점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마르크의 금리가 낮아 독일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로화로 통합된 이후에는 유로 지역 어디에 투자하든 동일한 금융비용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노동비용과 기업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일랜드나 핀란드로 투자처를 바꾸고 있다. 역내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구조적인 문제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연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는데. "독일 노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독일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부자다. 그렇다고 연금지급액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증가율을 낮춰야 한다."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독일을 '일하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세금과 복지제도를 개혁하자는 얘기다. 관료주의도 없애고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대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들은 한번에 해결하거나 한두달 안에 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내건 개혁정책인 '아젠다 2010'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너무 늦었다. 그러나 개혁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오는 9월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기독교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연금을 과감히 개편하고 사회 시스템을 시장경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연금 조정과 건강보험에 대한 여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야당은 더 많은 개혁을 위해 밀어붙이고 있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사회복지 제도를 적절하게 운영해야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 확대와 관료주의, 세금 증대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사회복지 쪽으로 지나치게 나아갔고, 통일은 이 문제를 증폭시켰다. 우리는 되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 어느 나라에나 투자할 수 있는 무한경쟁 사회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도 없다. 점프를 해야 한다." -독일 경제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독일은 잠재경쟁력을 갖고 있다. 서비스 분야는 좋지 않지만 여러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자동차와 화학 분야 등에서 잘 하고 있다. 독일은 숙련된 노동력과 교육훈련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독일 사회는 분명히 재구축돼야 한다. 과도한 사회복지와 세금,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로 돌아가야 한다. 독일의 잠재력은 바로 그곳에 있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경제,새로운 전통을 만들면 10년 뒤에는 다시 톱(top)으로 올라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 [ 한스 티트마이어 주요 약력 ] 1931년생 연방경제부 사무총장 EC(유럽공동체) 경제정책위원장 OECD 실무조정분과위의장 연방재무부 상임위원 EC 통화위원장 분데스방크 총재(1994~1999) 유럽경영대학원(EBS) 총장 겸 국제결제은행(BIS) 이사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