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不敗)신화를 자랑해온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의 패배는 독일 노동계와 정계 모두에 충격을 안겼다.


옛 동독 지역에서 벌인 한달 동안의 파업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채 끝내 무너지고 말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클라우스 츠비켈 IG메탈 위원장이 "파업은 실패했다"고 공개 선언한지 며칠뒤인 지난 7월4일 오전.


프랑크푸르트 리오너 거리에 있는 IG메탈 본부건물(쌍둥이빌딩)을 찾아갔다.


건물앞 붉은 깃발은 10여일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으나 노조원들의 분위기는 침통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국제업무부의 클라우디아 라흐만씨는 "기업인과 정부, 여론이 이번처럼 노조에 적대적인 때는 없었다"며 "노조 내부에서조차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IG메탈이 옛 동독지역에서 벌인 파업의 주된 목표는 '주 35시간 근무 확보'.


페터 젠프트 IG메탈 베를린지부 지역조정위원은 파업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달 26일 "옛 동독지역에서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사용자단체(Gesamtmetall)와 합의했는데 경기가 나빠졌다는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16개 기업에서 1만1천여명이 파업중"이라며 기세를 올렸었다.


자동차메이커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폭스바겐, 철강회사인 티센크룹, 자동차 부품생산회사인 미국계 페더럴모굴 등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IG메탈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세계 언론들은 '1954년 이후 첫 패배'라고 대서특필했다.


페터 쉐레르 IG메탈 도서관장은 "2차대전 이후 노조측 패배 사례를 들라면 1954년 뮌헨을 중심으로 전개된 총파업을 들 수 있지만 그때는 해고자 복직문제를 소홀히 다루어 평판이 나빴던 정도"라며 "이번처럼 완벽하게 노조가 패배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IG메탈의 패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1986년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우파 기독교 민주당 정부가 '파업 노조는 자기사업장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파업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동을 중단한 다른 업체 근로자에 대한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노동법을 개정한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IG메탈의 패배는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


파업기간중 옛 동독지역 16개 공장의 파업 참가자들에게 대체임금을 지급해온 IG메탈은 정작 BMW의 레겐스부르크 공장과 뮌헨 공장이 부품조달 차질로 가동중단 위기에 빠지자 엄청난 재정부담을 느꼈다.


BMW가 조업을 중단하면 2만여명의 이 회사 근로자들에게 IG메탈이 임금을 대신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잠트메탈 등 사용자 단체들은 "독일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해야 한다"며 노조의 파업에 양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론도 노조에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사회민주당 정부의 볼프강 클레멘트 경제장관마저 "잘못된 시기에 완전히 잘못된 지역(옛 동독)에서 발생한 파업"이라며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등 IG메탈에 등을 돌렸다.


파업이 벌어진 페더럴모굴사(社)에서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부품과 식량을 실어나르며 공장을 가동했다.


파업전선에도 균열이 생겼고 IG메탈의 패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명백해졌다.


사실 IG메탈의 실패는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다.


한때 3백60만명을 넘어섰던 조합원수는 작년에 2백70만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올들어서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맥킨지 컨설팅사는 최근 독일 국민의 14%만이 노조를 신뢰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기도했다.


여기에 노조원들조차 최근들어서는 노동시간보다 일자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IG메탈은 동독지역 노동자들에게 서독지역 임금의 90% 이상 수준을 지급하도록 산업별 노사협상을 맺었다.


그러나 동독 지역 노동생산성은 서독 지역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동독지역에 있는 기업들은 생산성이 높거나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동독 지역 노동자들은 회사를 붙잡아두기 위해 노조를 탈퇴했고 저임금을 받아들였다.


연방통계청이 조사한 옛 동독 지역의 작년 평균 임금은 시간당 10.66유로였다.


서독지역(15.17유로)보다 30% 가까이 낮았다.


소련식 사회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 옛 동독 지역의 노동자들이 낙후된 생산성의 한계를 노조 운동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었다.


지난 6월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서독지역(8.1%)보다 두배 이상 높은 18.3%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계 최강의 노동조합 IG메탈의 불패 신화는 저(低)생산성과 고(高)실업에 시달리던 옛 동독지역에서 이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작센 주와 브란덴부르크 주 등 옛 동독지역에서는 조직조차 거의 와해됐다.


IG메탈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3년째 0%대 성장으로 침체에 빠져 있다.


한때 6백50여명에 달했던 IG메탈 본부직원 숫자도 지금은 5백50명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파업을 이끌었던 유르겐 페터스 차기 위원장은 지금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성장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했던 '분배의 신화'는 결국 쓰디쓴 좌절을 맛본채 이제 변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저성장의 철벽에 가로막혀 분배가 주저앉은 것, 바로 그것이 IG메탈의 패배의 원인이었다.



특별취재반=김호영ㆍ현승윤ㆍ안재석ㆍ김병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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