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家)의 고민=삼성가의 가장 큰 고민은 이건희 회장 이후의 지배체제다. 특히 현재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재용 상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연착륙시킬지가 과제다. 이재용 상무에 대한 지분 상속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됐지만 그 이후 세대로 대주주지분과 경영권을 안전하게 물려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사회단체와 정부의 견제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사내에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는 상속·증여에 대한 포괄과세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고 참여연대 등 사회단체는 오너경영에 대해 감시의 눈빛을 번득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우 이재용 상무가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경영권 행사방식을 찾는 것도 과제다. 삼성 대주주들의 경영권 행사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무실에 출근해 대규모 투자에서부터 소규모 지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을 꼼꼼히 챙겨왔다. 이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주요 전략방향과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만 관여하고 나머지 일상적인 경영은 그룹의 사령탑인 이학수 사장이 이끄는 구조조정본부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맡겨왔다. 삼성의 수뇌부는 어떤 형태로든 대주주의 역할이 계속 유지돼야 하며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이나 구조조정본부의 해체는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상무가 향후 어떤 과정을 거쳐 리더십을 확립할지도 관건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그룹 창업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리더십과 권위를 형성한 데 반해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투자를 성공시키고 신경영을 통해 그룹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확보했다. 이재용 상무는 한때 벤처투자와 e비즈니스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6시그마,KT와의 제휴,반도체장비사업 등에 적극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발렌베리인가=삼성가의 고민에 대한 해답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발렌베리가다. 선진국 대기업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대주주는 지분율이 계속 하락하고 경영에서 점점 손을 떼는 회사가 많다. 도요타 포드 퀄컴 등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기업도 꽤 있지만 경영권이 예전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하지만 발렌베리가는 5대에 걸쳐 오너경영체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이 대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도를 허용한 덕분이다. 오너들은 계열사의 이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참여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경영을 책임지는 것은 회사에서 키운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들은 회사를 자율적으로 경영하지만 이사회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는다. 발렌베리가에서 앉힌 ABB의 바네빅 회장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경질된 사례도 있었다. 삼성도 이건희 회장이 일부 계열사에 이사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전문경영인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발렌베리가는 삼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전자 자동차 등 특정분야에 집중한 전문그룹이지만 발렌베리가의 계열사는 금융 통신 전자 자동차 제약 등 전분야에 걸쳐 있다. 삼성이 전자는 물론 보험 증권 등 금융과 화학 의류 호텔 엔터테인먼트 등 각 분야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스카니다 ABB 등 발렌베리의 계열사들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삼성이 본받고 싶은 대목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금융 등 나머지 분야는 여전히 국내 1위에 머물고 있다. 삼성은 각 분야의 계열사들을 유지하면서 이를 각각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대주주가 적절하게 경영권을 행사하는 미래비전을 발렌베리가의 사례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덧붙여 발렌베리 계열사들이 스웨덴 스톡홀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데도 비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사회단체는 물론 학계와 정부에서마저 재벌을 견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경우와는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