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반도체가 현대전자(현재의 하이닉스)로 피합병된 1999년의 반도체 빅딜은 반도체 산업의 인력 대이동을 야기했다. 이 빅딜을 전후해 LG반도체(LG전자 포함)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직해 중소기업인으로 출발한 고급 인력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빅딜 피해자'가 반도체 장비 및 부품·소재 공급 분야에서 중소기업인으로 대성하는 '새옹지마 스토리'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후광'으로 삼성 출신들이 메이저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LG 출신들의 성공담은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및 부품업계에서 LG 출신들은 LG반도체가 하이닉스로 합병된 이후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과거의 라이벌 회사를 상대로 거래를 터야 했다. 반도체 대기업에 특수화학약품 공급장비를 납품하는 에스티아이의 노승민 대표는 "창업 후 거의 매일 삼성전자로 출근하다시피하며 밀착 영업을 했다"고 말했다. LG전자 구미공장의 엔지니어 출신인 노 대표는 "초기엔 주변 사람들이 삼성을 상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수출 쪽을 노려보라는 권유를 많이 했을 정도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결국 치열한 마케팅 전략으로 지난 99년 에스티아이 대표로 취임한 후 삼성전자와 CCSS(화학약품 공급장치) 납품 계약을 체결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한 LG 출신 관계자는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는 출신 회사에 따라 편이 갈리는 등 제휴나 거래에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전했다. LG 출신들은 LG반도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공급처가 막히는 것은 물론 반도체 개발 후에도 테스트 시설이나 FAB(팹·반도체 양산설비)를 빌리기 위해 이곳 저곳을 전전해야 했다고. 이에 따라 LG 출신이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독자적인 기술력과 함께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수였다는 것이다. LG 출신 중 반도체 업종에서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킬 정도로 성공한 기업인들은 노 대표 외에 성규동 이오테크닉스 대표,김원남 탑엔지니어링 대표,안동철 반도체 엔지니어링 회장,윤배원 라셈텍 대표,이병구 크린크리에티브 대표 등이 있다. 성 대표의 이오테크닉스는 레이저 마킹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안 회장은 LG반도체 생산기술실 실장으로 근무하다가 생산기술실 인원을 데리고 분사,지금의 반도체 엔지니어링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에스티아이의 노 대표와 같은 LG전자 구미공장 출신으로 LCD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윤 대표는 LG반도체 D램공장 임원 출신으로 에스엠텍을 거쳐 지난해부터 라셈텍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는 기존의 칠러 외에 LED패키징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 대표는 LG반도체 생산기술센터장 출신이다. 그는 지난 92년 반도체 화학약품 부문을 국산화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크린크리에티브를 설립했다. 윤 대표와 이 대표는 특히 반도체 소재분야에서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인으로 성공한 LG반도체 및 전자 출신자들이 대략 20여명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