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미투자협정 체결 문제로 시끄럽다.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 일수)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등 경제관련 부처와 재계는 보다 큰 국가이익을 위해서 스크린쿼터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문화관광부와 영화인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투자협정(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다른 국가와 투자협정을 체결해 왔는데 한미투자협정은 뭐가 다르며 스크린쿼터는 또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렇게 갈등이 심할까. 우선 양자간 투자협정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1천8백개가 넘는 투자협정이 체결됐다. 1959년 독일과 파키스탄간 협정을 비롯 4백여개는 90년대 이전에 이뤄졌다. 투자협정은 현재도 확대 추세다. 한국만 해도 60여개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했고 최근 한일투자협정이 올 1월부터 발효됐다. 이런 투자협정이 왜 필요한 걸까. 양자간 투자협정 체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로 독일을 빼놓을 수 없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투자자들이 대외자산을 많이 잃어버린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투자협정은 이렇게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보호가 핵심이다. 해외투자는 사업상 위험이 있는가 하면 현지국가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른 국가위험 등 '비상업적 위험'도 있다. 예컨대 현지국가가 투자자의 자산을 국유화할 수도 있고, 전쟁이나 소요로 인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해외송금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이 모두 비상업적 위험이다. 사업상 위험이야 투자자가 감당해야겠지만 비상업적 위험은 그렇지가 않다. 정부간 투자협정은 바로 이런 비상업적 위험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투자유치국은 이런 협정을 통해 대외신인도를 높여 더 많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은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 그만큼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한미투자협정 체결은 대외신인도 제고 및 투자 유치가 아쉬운 한국이 1998년 6월 미국에 제안했던 것이다. 투자협정은 유럽형과 미국형이 있다. 전자는 투자자의 자산 보호가 주된 것이고 후자는 미국이 체결하는 투자협정으로 투자자 보호는 물론이고 진출과 영업활동 등에서 국내 투자자와 차별하지 말라는 원칙(비차별적 대우의 원칙)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미국형 투자협정을 '일방적 시장개방 압력'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형도 핵심은 투자자 보호다. 어느 나라든 일정 단계에 이르면 투자유치와 해외투자 수요가 동시에 생긴다는 점에서 일방적 시장개방이란 시각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미국이 체결하는 투자협정은 표준모델이라는게 있다. 스크린쿼터 문제는 이 모델의 제6조 때문에 야기되고 있다. 투자 유치국 정부가 국내에서 생산된 물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6조의 골자다. 스크린쿼터는 국내에서 생산된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라는 것이니 이 역시도 금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협정이 체결되면 스크린쿼터는 바로 없어져야 하는 걸까. 이 규정은 상대 국가에 투자하는 기업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인이 운영하는 영화관에만 스크린쿼터를 적용하지 말라는 의미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영화관에 스크린쿼터를 적용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럴 경우 국내외 투자자간 역차별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또 국내 영화관이 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하게 되면 어찌 되는지 등의 문제가 있다. 어쨌든 투자협정을 스크린쿼터 자체의 존폐 문제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정확한게 아니다. 우리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스크린쿼터 제도는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의무조항이 투자하려는 측에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일이다. 투자수익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물론 한미투자협정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투자 유치가 보장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한미투자협정의 존재는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외평채 가산금리 하락 정도에 따라 외국인 투자유치 효과를 추정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 핵 문제 등 이른바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협정이 누구에게 더 아쉬운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