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LG 등 주요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은 5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정부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와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투자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와 기업경쟁력을 갉아먹는 노동 문제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예컨대 정부가 투자할 여건을 조성해주지 않고 투자확대만 촉구하고 있다든지,노조에 편향된 노사정책이 기업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간담회는 산자부가 지난달 31일 갑자기 요청해서 급조된 모임이다. 해장국을 먹으며 1시간 40분간 계속된 간담회에서 재계는 의례적인 칭찬도 생략하고 막바로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심지어 한 참석자는 "산자부가 기업을 도와줄 정책수단이 사실상 없는데도 장관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감사한다"고 말해 잠시 분위기가 이상해지기도 했다. ◆규제완화 없으면 산업 공동화 △삼성 최광해 부사장=제조업의 공동화가 우려된다. 삼성은 최근 4년동안 국내에 29조원을 투자해 제조업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요즘 보면 중국과 태국 등의 기업도 품질에서 우리 수준 못지 않게 성장했다. 앞으로 투자처를 고려할 때는 이들 나라에 나가는 방법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막으면서 기업을 지방으로만 가라고 하면 기업들은 아예 외국으로 나가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풍산 서병민 부사장 등=정부에선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는 억지로 되는게 아니다. 기업들은 투자여건과 해당사업의 전망 등을 세밀히 따져본 뒤 전략적으로 판단을 한다. 투자 한번 잘못하면 기업 자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의 상당부분을 정부가 분담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기초과학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상당 부분을 지원해 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산업계 전반의 발전을 이끈 사례가 있다. △윤 장관=수도권 공장 신·증설 관련 규제완화는 올해말까지 해결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 특소세 인하 문제 등은 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경제장관들의 합의를 거쳐 잘 해결되도록 할 방침이다. ◆노사관계 법과 원칙으로 △A사 임원=노사 문제가 심각하다. 지방에 가 보면 공대 출신 공장장들이 기술개발 등의 안건을 제쳐두고 70%가량을 노사 관련 회의에 허비하고 있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여력도 방법도 없다. 엔지니어들이 내놓은 안건은 노사문제에 밀려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생산현장의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B사 임원=경영참여나 과도한 임금인상은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꺾는 요인이다. 이같은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달라. △윤 장관=참여정부의 노사정책 기조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정립이다.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데 타협하면 원칙을 깬다고 비판하고 조금만 강경하게 하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분명한 것은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입각해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것은 청년실업 문제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인원을 연초 계획 대비 50%정도 늘려줬으면 좋겠다. △C사 임원=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것이 특히 문제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기업으로서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노동시장으로 봐도 여성 취업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결국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켜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취업기회를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정책기조 분명해야 △LG경제연구원 이윤호 원장=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시장친화적인 영미형'과 '평등 사회보장 등을 강조하는 친노조적 유럽형' 중에서 유럽형에 가까운 것 같다. 유럽형은 실패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중심적인 영미형이 아닌 유럽형을 따를 것인가. 정부 정책기조가 불안정하게 비쳐지고 있는데 이를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 △D사 임원=사회적으로 확산돼 있는 반기업정서를 개선하는 데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한다. 기업의 목표와 역할은 이익극대화다. 그것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금호 오남수 사장=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 외국보다 공휴일이 너무 많아지게 된다. 이 또한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현재 연간 17일인 법정공휴일을 선진국 수준인 10일 정도로 줄여야 한다. △윤 장관=기업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개선하기 위해서 기업 스스로 회계투명성,지배구조 개선,윤리경영 등의 노력을 기울여 기업과 사회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해나가야 한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장경영 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