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회담을 전후로 북-미 관계가 서서히 풀릴기미를 보이면서 그동안 미뤄졌던 스위스 ABB(Asea Brown Boveri)그룹의 북한 고압전송망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외무장관으로는 처음인 미슐린 칼미-레이장관의 평양 방문중 ABB그룹과 북한 전기석탄공업성 전력공업총국 사이에 '양해문'이 조인됐다. 스위스 ABB 그룹과 북한 당국과의 송전망 사업은 클린턴행정부 시절 미국이 북한과 공동코뮈니케를 발표(2000.10.12)하는 관계를 개선할 무렵 시작됐으나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 지연돼 왔다. 양국간 이 사업이 재개되는 것은 캐나다가 대북 식량 지원을 결정하고 남한이쌀 20만t을 이달말 북한에 보내기로 한 것과 동시에 이뤄지는 것으로 지난달 베이징회담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북-미 관계 기류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측과 ABB그룹 사이의 사업관계가 본격화된 것은 2000년 11월말이었다. 북한의 금속기계공업성과 전기석탄공업성은 그 해 11월24일 평양에서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ABB 대표단과 `전기기계설비 생산과 전력망계통 현대화 협조 합의서'를조인했다. 이후 양측은 협조합의서에 따라 사업에 박차를 가해 헬무트 이르쉴링거 부회장을 단장으로 한 ABB그룹 대표단이 2001년 1월 방북, 고압선과 발전기, 배전반, 축전지와 같은 북한의 발전 설비와 제품들을 현대화하고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출범해 클린턴행정부의 대북 평화프로세스를 파기, 대북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면서 ABB의 대북사업은 순탄하지 못했다. 2001년 3월22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BB 그룹을 지칭하며 "유럽기업들이 극심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전력사업을 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으나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거래가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한 무위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01년 4월 9∼10일 스위스는 1975년 대북 수교 이래 최고위급 인사로 프란츠폰 대니켄 스위스 외무차관을 평양을 방문하고 두 달 뒤인 6월28일 ABB는 평양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사업 추진에 의욕을 보였지만 당초 계획했던 사업은 원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ABB그룹이 한 일은 2월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0회 생일 행사에 즈음한'김정일화 전시관 건설'에 설비를 기증한 것이 전부였다. 한 해 전 평양사무소 개설때까지도 빈번했던 이 회사 간부들과 홍성남 내각총리와의 면담 등도 더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19일 ABB와 북한측이 '양해문'에 조인한 것은 2년6개월 전 조인한 협조합의서를재확인하면서 그동안의 사업 부진에 대한 평가를 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양해문 조인을 계기로 ABB그룹의 송전망 사업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이 회사와 북한 전력 및 기계공업 당국은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투자조건과 전기송전 계통의 현대화를 위한 기술적인 협력 △발전소와 산업시설의 전기장비 및 제어 시스템의 성능향상 등을 주로 논의했다. ABB그룹은 또 북한 내각의 전기석탄공업성과 평양 북부의 한 군(郡)의 요청에의해 협동농장의 전기화 사업과 도시개발계획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2001년 4월 밝힌 바에 따르면 ABB그룹은 량강도대홍단군의 중소형발전소 설비와 보수사업을 벌이려 했으며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마무리 되면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ABB그룹은 1988년 스웨덴의 `아지어'그룹과 스위스의 `브라운 보베리'그룹이 합병, 출범한 중전기와 산업설비 생산업체이며 특히 발전설비부문에서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 독일의 지멘스와 함께 `빅3'로 통한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