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분야의 한.미 통상현안에 대한 막후 조율이 진행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북핵을 둘러싼 새 정부의 '자주외교' 추구로 한동안 냉랭했던 양국 관계가 통상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이라크와의 전쟁을 일방적인 승리로 끝낸 미국 지도부가 세계 전략의 초점을 군사.외교분야에서 통상 등 경제분야로 옮기는 중이라는 점도 양국 통상문제 조율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전을 밀어붙인 미국은 여세를 몰아 서비스 농업 등 분야의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협상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협상 자체를 미궁 속에 빠트린 상태다. 미국은 특히 하이닉스 D램 반도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안과는 전혀 관련없는 차세대 반도체에 관해서까지 실사를 벌이는 등 D램 반도체 이후의 통상 압박 재료까지 챙기고 있다. 한국에 대한 통상공세가 전방위로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 D램 반도체 수출길 막힐 판 한국은 지난 2,3일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하이닉스에 57.37%의 상계관세를 물리겠다는 미국 상무부의 예비판정을 유예해 달라고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한국측 협상 대표인 김종갑 산업자원부 차관보는 5일 "미국은 하이닉스의 반도체 대미 수출 물량을 줄이겠다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하이닉스를 지원하지 못하게끔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오는 12,13일 파리에서 다시 만나 협상키로 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예비 판정대로라면 하이닉스의 반도체 대미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미국산 자동차 수입물량 확대 요구 미국은 작년 기준으로 0.25%에 불과한 자국산 자동차의 한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선 한국 정부가 현행 8%인 관세를 2.5%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입자동차에 대한 특별소비세 체계를 바꿀 것도 요구하고 있다. 한국측은 이에 따라 고속도로 순찰 차량 1백대를 포드에서 구입하고 특소세제를 단순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밖에 정부 차원에서 수입자동차 모터쇼 개최를 적극 지원하는 등 '미국 달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높아진 철강수출 문턱 미국은 작년 3월 "한국산 철강 제품의 과다 수입으로 미국 철강업계가 고전하고 있다"며 14개 제품에 8∼30%의 고율관세를 매겼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도 동일한 조치를 당해 한국은 이들 나라와 함께 WTO에 미국을 제소한 상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련국가간 다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화 놓고 줄다리기 한국 정보통신부가 작년 5월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간 무선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단체 표준을 채택한데 대해서도 미국은 딴지를 걸고 있다. 표준은 정부가 아닌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인 데다 정통부가 채택한 표준이 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게 미국측 주장이다. 미국은 이밖에도 △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정통부 상설단속반에 사법경찰권 부여 △수입의약품의 국내 시장접근을 막는 국민건강보험제도 개정 방향 등을 놓고 한국과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전략컨설팅 업체인 CJK스트래티지의 김병주 부사장은 "부시 행정부는 업계의 입김을 많이 수용하고 있어 전임 정부와 달리 미국 통상정책에 업계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기업들과의 대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열어둬야 통상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