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거래에서 대금지급 날짜가 정해져 있는 `연지급 신용장'의 경우 지정은행은 만기가 되기 전에도 수출상에게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유럽 법원의 판례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국제 무역거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며, 특히 세계최대 민간국제경제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 은행위원회는 대법원 판결 내용을 안건으로 상정, 논의를 벌일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손지열 대법관)는 최근 중소기업은행이 선적서류 위조를 이유로 대금지급을 거절한 신용장 개설은행인 비엔피파리바은행을 상대로 낸 대금상환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제적 거래에서 신용장이라는 결제 수단을 사용하는 기본 취지가 수출상의 대금결제에 대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때 대금지급이 특정일로 지정된 연지급신용장은 신용장 개설은행에 의해 선적서류 매입의 방법에 의한 대금지급 은행이 지정된 때에는 국내 지정은행은 만기 전이라도 수출상에게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 신용장의 경우 지정은행이 명시되지 않았고, 파리상사재판소도 수출업체의 사기거래를 이유로 대금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며 피고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피고측의 대금상환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판결 내용은 통일상법전에 연지급신용장의 `만기 전 지급 가능성'을 명문화하고 있는 미국과 견해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만기 대금지급'을 원칙으로 하는 영국, 프랑스 등의 판례와는 상반된다. 나라마다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린 것은 신용장 거래의 국제적 기준인 신용장 통일규칙에 연지급신용장의 만기전 대금지급 여부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ICC 은행위원회는 오는 5월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놓고 연지급신용장의 만기전 대금지급 문제에 대해 논의, 국제적 통일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