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전세계적으로 정책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문제가 경제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일본과 같은 국가는 정책당국에서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이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좀비경제' 국면에 몰리고 있다. 이미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통화정책의 반감론 혹은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됐다.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케인스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Taylor's rule) 등을 통해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낮게 나온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debt deflation syndrome)을 이용하기 위해 이미 적정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뜨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 마저도 경제주체들의 현금흐름(cash flow)상 문제로 또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이처럼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갈수록 재정정책이 경기부양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 크게 두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중국과 같이 재정에 여유가 있는 국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일본처럼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세금감면을 마치 유행처럼 추진하는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두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먼저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은 그만큼 민간부문에서 총지출이 위축되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경기부양효과가 반감되고 있어 주목된다. 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은 더욱 문제다. 요즘처럼 세율이 문제가 되지 않은 상태,다시 말해 래퍼곡선(Laffer curve)상 세율과 세수간 '정(positive)의 관계'에 있는 표준지역에서는 세금을 감면할 경우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동시에 민간부문에서는 세금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소비되지 않고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저축됨에 따라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그만큼 총지출이 줄어들어 경기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crowding in effect). 우려되는 것은 자국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무력화 문제에 직면한 세계 각국들이 점차 경쟁국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수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여건에 비해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중국과 같은 국가에 대해서는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는 평가절하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통화마찰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올들어 위안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일본은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이런 요구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론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것을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각국의 명암도 뚜렷하다. 현 시점에서 재정에 여유가 있고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높거나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는 비교적 느긋한 편이다. 반면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낮거나 통화가치가 높은 국가는 조급할 수밖에 없다. 결국 완충능력에 따라 세계 각국의 명암이 엇갈리는 셈이다. 우리는 어떤가. '기대반 우려반'속에 출범한 노무현 경제팀은 첫 과제인 경기문제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이 점을 따져 대처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