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벤처를 하겠다고 정부연구소를 떠났던 연구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들리는 바에 따르면 IT(정보기술)분야는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BT(생명기술)분야의 경우는 연구원들이 속속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다 같이 어렵긴 마찬가지일 텐데 IT와 BT가 왜 이렇게 양상이 다를까. 투자의 위험성이나 기간의 장기성 등 모든 특징이 원래의 '연구개발'개념에 꼭 들어맞는 BT분야에서 이런 것이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혹자는 정부정책 코스닥 벤처캐피털 등이 BT의 특성을 고려치 못한다고들 하지만 이것이 어디 한국만의 문제일까. 정도의 차이일 뿐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며,경기침체기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한 가지 답은 우리 내부의 산업구조에 있는지 모른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세계시장을 이끄는 대기업들이 국내에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IT 벤처기업들에는 유리한 환경이다. 서비스 경쟁을 선도하는 SK텔레콤 KT 등 통신분야 대기업들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려워도 이들의 투자가 IT 벤처기업들의 시장 내지 탈출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반면 BT는 이런 측면에서 불리한 여건이다. 제약회사들이 있다지만 BT 벤처기업의 시장역할을 할 정도는 아니며,탈출구 역할을 할 위치는 더더욱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중소기업정책토론회에서 불균형 성장정책을 지적하며 '균형'과 '통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중소기업의 역할론'을 강조한 듯싶다. 그러고 보니 DJ정부 초기가 생각난다. '중소기업 역할론'을 내걸었고 이는 곧 벤처기업 육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당시의 역할론은 보통의 역할론이 아니었다. 성장의 동력을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바꾸려는 이른바 '역할대체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럴듯한 '명분론'은 어느새 '정부만능주의'로 이어졌고,시장은 그 대가가 뭔지를 보여줬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그들은 '빌 게이츠 같은 인물','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같은 인물,그 같은 기업의 성장과정에 IBM이란 대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이는 곧 열 가지 정부 정책을 대신할 시장의 역할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역할교체론'은 벤처기업들의 또 다른 성장경로를 봉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경쟁환경은 '대기업 위주'도 '중소ㆍ벤처기업 위주'도 아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갈수록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어 둘 모두 강한 국가가 유리한 국면이다. 2003년 OECD 한국보고서는 대기업에는 '규제완화'를,중소기업에는 '과다한 보호와 정부개입 축소'를 제시했다. 결국 시장지향적인 '하나의 기업정책'이 갖는 의미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