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최태원 SK㈜회장이 22일 끝내 구속됨에 따라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은 각 계열사 CEO들의 책임경영체제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을 골자로 한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손길승 회장을 비롯한 SK 경영진은 이날 저녁 최 회장에 대한 구속이 집행되자긴급 사장단회의를 갖고 최 회장 공백에 따른 향후 경영대책 등 그룹 창립 50년 이래 몰아닥친 최대위기를 헤쳐나갈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비상경영체제= SK는 이날 저녁 손길승 회장 주재로 열린 긴급 사장단 회의에서 `흔들림없는 경영'과 함께 각 계열사별 CEO 책임경영체제를 결의했다. 손 회장은 회의에서 "국민 여러분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지만 흔들림없는 경영으로 국민과 고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SK로 거듭나겠다"면서 "이번 일을 국민에게사랑받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SK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했다. SK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경영진 공백과 관련, SK㈜는 황두열 대표이사 부회장체제로 운영하며 SK구조조정추진본부는 손관호 SK텔레콤 전무(경영지원부문장)가 본부장 대행직을 수행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 10월 제주선언에서 발표했던 것과 같이 각 계열사별로 CEO가 중심이된 책임경영체제로 그룹을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SK는 또 최 회장 구속 직후 `검찰 수사에 임하는 SK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내고 "최근 진행되고 있는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많은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계 안팎에서는 최 회장이 대주주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손 회장이 지금까지처럼 그룹 전체의 운영을 이끌면서 최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과 사촌동생인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 주력 계열사 부회장단 등이 손 회장을 보좌하는 형태로 그룹이 운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배구조= 지난해 말 현재 5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SK그룹의 지배구조는 SK㈜의 5.12% 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을 정점으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가 주요 계열사 지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형태로 돼있다. SK㈜는 SK텔레콤 20.85%, SK글로벌 37.86%, SKC 47.66%, SK해운 35.47% , SK엔론 50% , SK제약 66% 등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이며 최 회장 본인은 SK㈜와 함께 SKC&C(49%), SKC(7.5%), SK글로벌(3.31%), SK케미칼(6.84%)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반면 최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과 최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SKC 회장, 최신원 회장의 동생인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 등은 계열사 지분을 거의갖고 있지 않으며 손길승 그룹회장 역시 계열사 지분이 없다. 이는 고 최종현 회장 사후 열린 가족회의에서 향후 경영권을 장남인 최태원 회장에게 밀어주기로 합의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결과이다. 오너 일가가 주요 계열사의 임원으로 포진해 있지만 지분구조로 보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이 사실상 최 회장 한 명에게 집중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최 회장이 설혹 사법처리된다 해도 지배구조 자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아닌 만큼 최 회장 스스로 이 지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룹 전체에 대한 대주주로서의 지배권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손 회장이 지금까지처럼 그룹 전체를 챙기면서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결재를 대신하거나 이사회 의결권의 일부를 최재원 부사장 등 친인척들에게 위임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신구속 상황이 장기화되거나 구속이 되지 않더라도 새정부 출범 후 최회장에 대한 행정당국의 견제가 계속될 경우 또한번의 가족회의를 통해 경영권 이양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총수가 불법을 저질러 사법처리 됐는데도 그대로 경영권을 유지할 경우 발생할수 있는 대외신인도 하락과 기업이미지 악화로 인한 대내외 사업의 직접적 타격을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차질= SK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탄탄한 구조조정과 SK텔레콤의 지속적 성장세를 발판으로 지난해 KT 민영화에 참여하고 라이코스와 팍스넷, 세계물산을 인수하는 등 사업의 보폭을 넓혀왔다. SK는 또 SK㈜를 통해 한전 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 입찰에 참여한 상태이며 011과 OK캐시백 회원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카드사업 신규진출도 적극 추진중이다. 그러나 그룹의 총수인 최 회장이 구속된 이상 이같은 공격적 경영기조에 변화가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SK가 진출하려는 신규사업이 대부분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돼 있거나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어서 지금까지와 같이 공격적으로 추진하기는힘들 것"이라며 "그룹 경영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SK텔레콤 등 일부 계열사는 보유 자금이 풍부한 상태지만, 최근 미국 무디스가 SK㈜에 대한 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춰 그룹 전체로는 신규 투자 자금 마련도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SK가 올해 핵심사업으로 추진중인 중국관련 사업 역시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가 발표된 지난 17일 이후 SK 일부 계열사에는 해외의 몇몇 거래처에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문의가 여러차례 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SK 관계자는 "차이나유니콤과의 합작법인 설립 등 현재 추진중인 중국관련 사업은 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최 회장의 구속이 직접적인 해외사업 차질로이어지지는 않을 것"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과거 양빈(楊斌) 신의주 특구 초대장관 사건에서 볼 수있듯 총수 구속으로 인한 기업의 대외신인도 하락이 어떤 식으로든 진행중인 사업에차질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올해 4월로 창사 50주년을 맞는 SK그룹이 준비해온 창사 기념행사도 최 회장의 구속에 따라 축소되거나 생략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기자 passi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