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盧)노믹스'의 밑그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대기업, 금융, 노동, 산업 정책 등 베일에 가려졌던 구상을 한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대기업 정책에는 적지 않은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이 엿보이지만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기본방침은 재확인되고 있다. 인수위 핵심관계자들 사이에 경제현안을 놓고 개혁론과 안정론이 양립하는 양상이다. ◆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개선 김대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는 구조조정본부가 바람직한 기능을 발휘하는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외환위기이후 사라진 그룹(회장)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로 간판만 바꾼채 유사한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는 시각이다. 김 간사는 "먼저 기업 자율에 맡기되 여의치 않으면 정리를 권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인수위내에선 구조조정본부가 기업들의 순환출자를 활용하는 창구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본부는 대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현 정부에서도 현실적인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제도인데다 계열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어서 정.재계간 마찰도 우려된다. ◆ 경제개혁안 김 간사는 출자총액한도제,집단소송제 등 현안과 관련 "노 당선자가 지난달 31일 경제 5단체장과의 회동에서 제도도입 유보요청을 거절했다"고 강조했다. 출자총액한도제는 더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수준은 유지한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상호 빚보증은 거의 해소됐지만 순환출자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어 기업지배구조가 이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재계는 그동안 규제혁파 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들 사안과 관련된 기존의 규정을 없애거나 완화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상속.증여세 부과때 포괄주의를 도입, 부유층에 대한 세금부과를 강화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방침도 일정부분 속도를 낼 움직임이다. 이정우 경제1분과 간사는 "관련부처와 연락하면서 이미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제의 경우 획기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최고경영진과 연고자 배제 등 제도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 산업정책, 벤처정책 정부가 벤처기업으로 지정만해주면 우선적으로 지원해 주는 방식은 지양될 전망이다. 김 간사는 신산업정책에 대해선 "IT(정보기술), BT(생명과학기술) 등 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산업 클러스터(집적)를 형성해 산.학을 연계하면서 R&D(연구개발) 투자도 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 성장잠재력 중시 이 간사는 경제분야 새 제도들이 성장잠재력 배양과 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도입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구조조정 등 기존의 정책들은 '5+3' 원칙을 유지하는 가운데 효과성과 시의성을 검토하게 된다"며 급격한 정책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노 당선자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조흥은행 매각,지수선물 이관 문제 등 당장의 현안에 대해 인수위는 이들 사안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 노 당선자에게 보고했다. 노 당선자도 이같은 인수위 보고에 동의했다. 허원순.김병일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