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10월에 열린 '도쿄 모터쇼' 개막식에는 일왕과 총리가 함께 참석해 성공적인 대회를 기원했다.


세계 3대 모터쇼로 손꼽힐 만큼 행사 자체의 비중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산업계 이벤트에 국가와 정부가 발벗고 나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격년제로 열리는 이 모터쇼는 지난해에도 개최됐지만 9.11 사태의 영향으로 개막식은 취소됐다.)


제네바 모터쇼에도 스위스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선진 각국에서는 주요 전시회마다 최고지도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대통령이 전시행사에까지 참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제전시회는 해당 산업만의 행사이기에 앞서 그 나라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모터쇼의 경우 자동차의 경연장이기도 하지만 '국가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가.


서울모터쇼는 물론 에어쇼 섬유박람회 등 주요 전시회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잘해야 국무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하는 정도다.


그만큼 기업활동을 격려하는데 인색하다.


격려는커녕 대통령이 기업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마치 '정경유착'인처럼 매도당하는 측면도 있다.


기업과 기업인은 늘 다른 경제주체들에 앞서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정도로 '반(反)기업정서'가 만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툭하면 '총수 사재출연'이 거론되기도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이 "무한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 시장에서 그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기업을 돕기보다는 기회주의적 범죄집단으로 간주하는 상황이라면 경제발전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고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반기업정서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기업은 우리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삶의 터전이자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의 주역이요, 국가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각종 공익.장학사업의 든든한 후원자다.


무엇보다 나라살림을 꾸려갈 수 있도록 큰 밑천(법인세)을 대주는 국부(國富)의 원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00년에 8조원 규모의 세전 이익을 거둬 무려 2조원이 넘는 세금을 냈다.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을 합친 주요 5개사의 법인세는 3조5천억원 규모여서 그해 전체 법인세(17조8천억원)의 약 20%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이들 5개사의 세금 규모가 1조6천억원으로 전체 법인세의 약 10%를 차지했다.


올해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삼성전자 한 개 회사의 세금만 하더라도 법인세 예산(16조1천억원)의 15% 가량을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 현대차 등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둬 이들의 국부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고용면에선 말할 것도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 5개사의 종업원수는 모두 12만6천명.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치면 부양인구는 모두 50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4천6백만명)의 1.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 회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일자리 창출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모든 것을 세우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초인 민간부문이 지금 공격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간부문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의 용기를 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과 경영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습니다."


지난 80년대 초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경제철학을 뒷받침했던 키스 조셉 경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때이다.


그는 1백50회 이상의 대학강연에 나선 '개혁의 전도사'로 대처 총리가 만성적인 취업난이라는 '영국병'을 치유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20년 전 영국에서 필요로 했던 개혁의 철학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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