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제정책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일까. 갈수록 서로의 장점을 학습한 탓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흔히들 양당간 정책기조를 구분하는 것이 '설명상의 편의'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신경제'를 열었다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만 봐도 그렇다. 신경제 동력으로 구조조정 규제완화 기술혁신 등을 거론하지만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들이 전 정권인 공화당 부시 행정부와 그렇게 차이가 많았다고 할 수는 없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난히 강조됐던 기술혁신 정책만 해도 실은 부시 행정부가 이미 실시하기 시작했거나 검토 중이던 아이디어를 '재포장'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미국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것이 '초당적(bipartisan)'이란 말이다. 말이 좋아 초당적이지 실은 양당간에 서로의 색깔이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탓도 크다. 지금은 이런 분야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이니 서로 닮아가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정책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양이다. 정권잡은 정당이 바뀐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상한 이런 인식은 '오차범위 내의 경쟁'을 벌인 상대당과의 이념 및 정책 차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정치적ㆍ이념적 성향이야 그렇다쳐도 경제정책에서 차이가 과연 그렇게 클까. 또 그 차이란 것이 커질 수 있는 경쟁환경에 우리가 지금 놓여 있는 걸까. 성장보다 분배 중심이라고들 하지만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제시한 건 오히려 당선자쪽이다. 6%의 잠재성장률에 1%포인트를 더했다지만 6% 성장률도 과대 추정이란 소리가 있는 판에 1%포인트를 더 올리겠다니 보통 노력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이 때문인지 기술혁신 신산업 육성 외국인 투자 등 성장원천 확충에서 정당간 차이는 사실 별반 없다. 차이가 있었다면 기업과 관련한 정책,특히 경쟁정책이다. 한쪽은 규제를 수반하는 '경쟁의 틀'에 보다 주목했고,다른 한쪽은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촉진이다. 하지만 둘 모두 '경쟁'을 강조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현실은 결국 혼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쟁이 국제화될수록 경쟁정책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행정수도 등 몇몇 정책의 차이란 것도 실은 시기나 접근방법의 문제일 뿐 방향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이 낡은 것처럼 산업도 기술도 융합되는 추세에선 제조업과 서비스업,대기업과 벤처기업,과학과 기술 등 각종 이분법도 낡은 것이긴 마찬가지다. 경제ㆍ산업ㆍ기술정책이 큰 오차범위 밖으로 차이나기가 점점 힘든 경쟁환경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방향 논쟁이 아니라 정책의 콘텐츠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찾기보다는 한나라당 공약까지 포함해 최상의 콘텐츠를 짜보면 어떨까.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