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치료제 등 특허의약품의 저가 공급에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상이 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한국의`개도국 지위'에 관한 논란이 원만히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공중보건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특허원을 인정하지 않고 해당 의약품을 복제.생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를 제3국에 의뢰하고 이를 역수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EU와 미국 등은 그러나 강제실시 수혜대상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30개 회원국을 완전 배제하고 일부 고소득 개도국들은 국가비상사태에 한해서만 제한 사용토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대해 OECD 회원국인 한국과 멕시코를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대만, 헝가리 등 일부 동구권 국가들은 강제실시 발동포기 여부는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선택에따라 결정돼야 하며 OECD와 고소득 개도국 등 인위적인 기준을 설정해서는 안된다고강력히 반발했다.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 이사회 의장은 일반이사회에 제출할 합의문초안에 `OECD 회원국' 또는 `고소득 개도국'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대신에 각주에강제실시 수혜대상 제외국가의 이름을 명기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은 ▲WTO 협정상 개도국 지위는 당사국의 `자율적인 선언'에 의해결정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재안은 다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있으며 ▲국내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강제실시 발동을 전면 배제하는 것은 수용할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제네바 주재 12개 OECD 회원국 대사들은 비공식 회동을 갖고 의장 중재안 수용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한국과 멕시코는 강제실시 수혜대상 배제는 당사국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완강히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EU와 미국 등 선진국들과 한국, 멕시코 등 관련 당사국들은 막후 협상을 통해 합의문 초안에 `일부 회원들(some members)'과 `다른 회원들(other members)'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일반이사회의 안건 처리에 앞서 해당국이 자발적으로 입장을 공개 표명한다는 원칙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은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만 강제실시를 발동하겠다는 당초의 요구를 일단 관철하게 됐으나 앞으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개도국지위문제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WTO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이 아프리카 등 제약능력이 없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특허의약품을 저가에공급하기 위한 EU 등의 제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번 TRIPS 협정의재해석에 관한 협상결과가 농업협정상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논란의 불씨가되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적인 고려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U와 미국은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25개 WT0 주요국 고위급 회담에서 개도국에대한 특별대우 문제와 관련해 `졸업' 개념을 도입하거나 소득 수준 등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 개도국의 지위를 세분화하고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한편 WTO는 지난해 11월 제4차 도하 각료회의에서 특허의약품의 저가공급을 위한 TRIPS 협정의 재해석에 관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올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합의했으나 강제실시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질병의 범위와 복제 의약품의 역수출 방지를위한 안전장치 등에 관한 이견이 맞서고 있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o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