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9일 우리 경제가 올 해의 높은 성장에이어 내년에도 5.7%의 비교적 견조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잠재성장률(5.5∼6.0%) 범위이긴 하지만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성장 전망치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다. 국내 경제예측기관의 전망치는 삼성경제연구소가 5%대, LG경제연구소가 5.6%,한국경제연구원이 5.8%,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3%, 금융연구원이 5.5%, 산업연구원이 5.6%다. 미국의 대 이라크전쟁, 선진국 경제침체 등 그다지 우호적이지않은 해외 여건과노사관계 불안, 물가불안, 수출채산성 악화 등의 산적한 악재를 감안한다면 한은의내년 경제전망은 '장밋빛'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은은 올 해 성장을 주도했던 소비가 급격히 꺾일 것으로 보이지않는데다 수출과 설비투자의 호조로 세계 경제에 비해 견조한 모습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 정규영 조사국장은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은 상반기엔 수출이, 하반기엔설비투자와 민간소비가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여건 하반기 개선 한은은 내년 세계경제가 상반기엔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다가 중반이후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회복세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경제는 대 이라크 전쟁 우려 등으로 당분간 낮은 성장에 머물 것이나 하반기들어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저금리 기조 및 추가 감세조치 등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일본 경제도 내년 중반이후 세계 경제환경 개선으로 수출이 호전되고 설비투자가 회복되면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 경제는 수출과 외국인 직접투자가 호조를 지속함에따라 올 해의 고성장을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이 미국 2.6%, 유럽 2.3%, 일본 1.1%,중국 7.2% 등으로 평균 3.7% 성장, 올해(2.8%)에 비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측하고있다. ◆ 낙관적인 우리 경제 한은은 이같은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우리 경제도 올 해에 이어 5.7%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상반기에는 높은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크게 둔화되면서 성장률이 5.5%로 올 해 4.4분기(6.5%)에 비해 크게 둔화하지만 하반기엔 소비와 설비투자가 회복되면서 5.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규영 조사국장은 "내년 하반기 들어 미 경기가 호전되는 등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세가 높아져 성장률이 6% 가까운 수준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이 이처럼 성장률을 예상외로 높게 잡은 것은 올 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었던 내수 증가세가 올 해만은 못하지만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GDP의 6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 해의 7.0%에 비해서는 낮지만 5.3%로 비교적 견조한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유지하고 있는 소비수준이나 패턴을 바꾸지않으려는 경향인 '소비의 지속성'에다 높은 임금상승에 따른 가계의 실질구매력 증가가 소비를 받쳐줄 것이라고한은은 설명했다. 다만 정부의 대출 억제책과 부동산안정책으로 올 해와는 달리 가계대출 확대와부동산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 부문의 소비증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말했다. 올 해 10월이후 지속되고 있는 20%대의 높은 수출 증가율은 내년 상반기 설비투자를 촉진할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내년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수출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기업들은 올 해 미뤄뒀던설비투자에 나서지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다만 설비투자 증가율은 과거 경기상승 국면 보다는 낮은 10%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수출 역시 1천760억달러로 금년 증가율(8.3%)과 비슷한 수준인 8.0%의호조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올 해 하반기중 큰 폭의 증가에 따른 반사효과로 증가율은 올 해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지만 우리 수출의 안전판인 중국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다 미국.일본경기회복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흑자규모가 축소되는데다 서비스.소득.이전수지 적자폭 확대로 30억달러 흑자에 그쳐 올해 수준(70억달러)에 크게 미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는 다소 불안할 전망이다. 한은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올 해(2.7%)보다 높은 3.4%로 전망했다. 이는 근원인플레이션 예상치(3.1%)를 웃도는 것이다. 환율과 국제유가는 대체로 안정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노사관계 불안으로 높은임금상승세가 지속되고 공공요금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올 해의 주택가격급등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안팎에 도사린 악재들 하지만 한은의 긍정적 전망과는 달리 내년 우리 경제에 드리운 암운도 만만치않다. 우선은 임박한 미국의 대 이라크전쟁이 큰 걱정이다. 한은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해도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지만 전쟁이 나기전엔 기간과 파급효과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유가가 불안하게 움직일 경우 물가나 수출, 투자, 소비 등 우리 경제의 전부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IMF를 비롯한 국제 경제예측기관들은 내년 세계 경제를 올 해보다 훨씬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나 미국과 일본의 내년 경제가 확실하게 호전될 것인지에 대해서는여전히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계대출문제도 단순치않은 악재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책으로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죄면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월말 현재 252만명인 개인 신용불량자들이 내년엔 3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의 우려처럼 내년 상반기 '가계 신용대란'이 현실화된다면 소비둔화-투자부진-생산위축 등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증가해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최근들어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가 많이가시긴 했으나 미국 경제가 내년에 확실하게 회복된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 면서 "이라크 전쟁의 결행시기와 기간, 파급 효과 등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암초"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현재 카드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는 개인신용불량자 문제가 내년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 있다"면서 "이는 소비에직접적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경제의 수출채산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중국의저가제품 홍수에 따른 세계경제의 디플레 우려도 만만치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