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별(임원)"을 다는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들이 특정 직급까지 승진하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던 이른바 "유리 천정(Glass Ceiling)"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 임원의 절대 숫자는 아직 남성 임원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 하지만 기업 활동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커지면서 하나 둘 씩 여성 임원들을 배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에서 활동했던 여성 임원은 단순한 "구색 맞추기"나 대주주 일가의 후광에 힘입어 발탁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각 기업에 등장하고 있는 여성 임원들은 능력을 검증 받은 프로 중의 프로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여성 임원을 두고 있는 곳은 LG그룹. 4명이 상무로 포진해 있다. 그룹 교육 기관인 LG인화원의 윤여순 상무(47),LG전자 디자인연구소 전문위원 김진 상무(42),국내 시스템통합(SI)업계 최초의 여성 임원인 LGCNS의 이숙영 상무(41),LG생활건강에서 화장품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송영희 상무(41) 등이다. 윤여순 상무는 2000년 LG그룹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원이 됐다. LG인화원 사이버센터장으로 간부교육 기획을 총괄하는 그는 지난 98년 "사이버 교육"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교육공학 박사로 95년 부장으로 입사한 그는 인터넷을 통해 강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김진 상무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품 기획 전문가이자 산업 디자이너. 83년 수습사원으로 입사한 뒤 18년 만인 지난해 임원에 올랐다. 이숙영 상무는 LGCNS 소프트웨어공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국세 종합시스템,행자부 재난관리시스템 등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6시그마 활동으로 품질경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작년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송영희 상무는 올해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외국계 화장품 메이커인 에스티로더에서 근무할 때 매년 3백%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올리는 등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스카우트됐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 95년 첫 여성임원을 배출했다. 현재 여성 임원은 제일기획의 최인아(41)상무,삼성증권의 이정숙(37)상무,삼성전자의 김은미(42)상무 등 3명. 최인아 상무는 지난 84년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후 만 17년만인 2000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이다. 그는 "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라는 SK(주)의 광고 문구를 만든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김은미 상무와 이정숙 상무는 각기 삼성전자와 삼성증권에서 법무 관련 업무를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변호사로 법률 뿐 아니라 전기전자나 금융업무에 대해서도 전문적 지식을 자랑한다. 대한항공 이택금(53) 상무는 국내 항공업계에서 최초로 여승무원 출신으로 임원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72년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입사한 그는 29년만인 지난해 승무원 3천5백여명을 거느린 승무(乘務)이사로 승진했다. KT의 글로벌 사업단 해외 ADSL(비대칭가입자망) 사업팀장인 이영희(45) 상무보는 올해 2월 공기업 첫 여성 임원에 올랐다. 기술고시 출신인 그는 81년 체신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교환기와 인터넷 등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일을 해왔다. ADSL을 외국에 수출하는 일을 맡아 크게 성공시킨 게 임원 승진의 발판이 됐다. 대성그룹 전성희(59) 이사대우는 김영대 회장의 비서로 일한다. 대학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서 생물 교사로 재직하다 지난 79년 입사,23년간 김 회장의 비서를 맡고 있다. 그는 외국기업과 합작회사 설립 등 중요한 협상에도 참여하는 "전문비서"다. 이밖에 금호그룹의 문화사업을 맡고 있는 금호문화재단의 정혜자(52) 상무와 IMT-2000 사업자 KT아이컴의 조화준(45) 재무담당 상무도 대표적인 여성 임원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 여성 임원은 한결같이 자신의 성공 비결을 남들보다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굳이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남자 동료와의 매끄러운 업무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매번 여자라는 것을 내세우며 불이익을 호소하다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