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국내 D램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를 가리기 위한 방한 실사를 3일부터 시작한다. 독일 인피니언이 지난 6월 한국산 D램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며 제소한 데 따른 이번 실사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삼성전자에 세계무역기구(WTO)규범에 위반되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최근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제소까지 겹쳐 이래저래 신경이 거슬리는 일이다. 이번 조사와 관련해 한국은 정부보조금에 해당되는 것은 없으며,정작 보조금을 받은건 인피니언이란 주장이다. 인피니언이 지난 5월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지역에 있는 공장을 증축하면서 지방정부로부터 1억9천2백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았음을 적시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보조금을 받았지만 WTO가 허용한 낙후지역 보조금으로 인정받아 합법적으로 처리됐다고 반박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무 증거도 없이 '중앙정부'가 뭔가 줬을 것으로 의심받는 상황인 반면 인피니언은 보조금을 받았지만 합당한 '지방정부'지원이니 떳떳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피니언 주장의 부당성과는 별도로 한가지 주목할 대목이 이 '지방정부' 부분이다. 사실 독일의 산업 및 지역발전에서 지방정부 역할은 대단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독일의 혁신시스템을 지방정부간 혁신레이스(race,경주)로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과기부가 지방과학기술육성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지방정부의 과학기술투자가 저조하니 필요하다는 논리다. 산자부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산업혁신이 중요하다며 산업입지 등 법 개정과 함께 해마다 지역산업 육성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됐음에도 지방정부는 무얼 하길래 중앙정부가 이렇게 나서야만 할까. 지방자치제 이후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됐다. '지방자치(自治)'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킨 사실상 '지방타치(他治)' 아니었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뭔가 근본적인 데서 잘못됐음이 틀림없다. 하기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나 지방정부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어디 이번 보조금 논란에서만일까. 만약 그랬다면 얼마 전 경제특구 논란만 해도 그 양상이 사뭇 달라졌을지 모른다. 각 지방정부가 서로 특구다운 특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테고,이로써 전국적인 특구화도 그만큼 앞당길 수 있는 일이다. 또 특구의 유인책을 두고 중앙정부와 전국단위의 노조가 맞붙기보다 그 대립이 지역차원으로 격하되면서 협상으로 변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디 이뿐일까.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별로 모든 승부를 거는 듯한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도 사라졌을지 모른다. 제대로 된 자방자치와 지방정부를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간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지방정부다운 지방정부는 결국 중앙정부로부터의 정책수단 이양에 달렸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