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기 양곡유통위원회가 내년 추곡수매가에 대해 인상과 인하라는 상반된 두가지 대정부 건의안을 내놓은 것은 수매가 결정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양곡관리법에 따라 수매가는 농림부가 매년 양곡유통위 건의안을 토대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정부안을 만든 뒤 국회 동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고 있다. 하지만 양곡유통위는 지금까지 15년간 매년 수매가를 결정할 때마다 심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보통 농민단체 대표 5명, 소비자단체 대표 5명, 학계 및 연구기관 5명, 언론.유통분야 5명 등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양곡유통위는 위원들간 입장 차이가 워낙커 농민단체 대표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수매가를 결정하기 일쑤였다. 올해도 농민단체는 12% 인상안을, 소비자단체는 5% 인하안을 각각 제시하며 팽팽히 맞서다 결국 3% 인상안과 2% 인하안으로 서로 양보하며 두가지 건의안을 모두정부에 건의하기로 절충한 것이다. 이처럼 복수안이 나오게 된 것은 올해 양곡유통위가 어떤 사안도 표결처리를 하지 않고 반드시 전원합의에 의해 결론을 내린다는 원칙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농림부 김현수 식량정책과장은 "서로간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서 도출된고육지책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곡유통위가 소비자단체의 2% 인하안을 제1안으로, 농민단체의 3%인상안을 제2안으로 확정하고, 특히 2% 인하할 때는 쌀 농가의 어려움을 고려해 800억원 이상의 논농업직불제 예산증액을 건의한 점이 주목된다. 비록 복수안이 제시됐지만 수매가 인하쪽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다는 관측이다. 2004년 WTO(세계무역기구)쌀재협상을 앞두고 국내 쌀의 경쟁력을 높이고 쌀 과잉공급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수매가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농민단체의 명분도살리면서 수매가를 내리는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성진근 양곡유통위 위원장은 "농민단체 대표들이 예전 같았으면 이미 탈퇴했을텐데 끝까지 남아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많이 양보했다"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정부는 앞으로 양곡유통위의 건의안을 바탕으로 국회 동의안을 마련, 12월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양곡유통위는 쌀 가격지지 정책 아래 유효했던 양곡유통위가 쌀 시장 개방압력으로 국내외 쌀가격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등 쌀 시장을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존재할 근거가 없다며 양곡유통위 대신 `양곡정책심의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한편 매달 정례회의를 열어 양곡정책전반에 걸친 심의 기능을 수행토록 할 것을 제안했다. 또 쌀값 하락추세에 대응한 농가소득 안정대책을 마련하고 WTO협정에 의해 매년축소되고 있는 정부수매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도 건의했다. 이와 함께 수확기 홍수출하에 따른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생산농가의 유통조절능력 개선이 필요하다며 수확기 쌀을 담보로 농협 등에서 대출을 해주는 미곡담보융자제 도입을 장기과제로 제시했다. 이밖에 소비자 신뢰확보 차원에서 포장양곡에 대한 의무표시사항을 강화하고 생산단계에서 품질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 고품질 쌀 생산을 유도할 것을 건의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