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빙하기를 맞고 있다. 경영난으로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임금체불과 부도가 늘고 있으며 기업매물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기술력이 있고 사업 전망이 밝은 벤처기업들마저 함께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따라 우량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등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자금난에 허덕이는 벤처기업들 지리정보 제공업체인 쓰리지코어의 정훈교 대표는 최근 벤처기업 대표들로부터 전화를 몇통 받았다. 직원들에게 임금으로 줄 자금 2천만∼3천만원만 급히 빌려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 돈을 대표 마음대로 빌려줄 수 없어서다. 그는 자금이 떨어져가는 벤처기업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자금사정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 연말 '벤처대란설'이 나올 정도다. 벤처업계 일부에서는 자금이 고갈돼 올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벤처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벤처빙하기'가 곧 닥칠 것이라는 경고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벤처기업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지방노동사무소에는 체불임금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쇼핑몰 운영업체 N사의 경우 실질적인 경영자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도피해 근로자들이 단체로 진정을 낼 예정이다. DVD업체인 G사에 근무하는 B씨는 7개월간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대로 운영되는 기업이 손을 꼽을 정도다. 코스닥에서는 부도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는 거의 일주일에 한개 업체씩 부도가 나고 있는 형편이다. 코스닥 등록 벤처기업의 40%인 1백41개사가 올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 투자 꺼리는 벤처캐피털과 대기업들 벤처의 자금줄인 벤처캐피털들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에따라 벤처기업은 자금확보에 더 목이 타고 있다. 한국기술투자는 올해초 벤처기업에 5백90억원을 투자하려던 목표를 3백50억원으로 낮췄다. 시장여건이 최악인데다 투자자금 회수 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이회사는 지난 2000년에는 1천2백80억원을 투자했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투자를 중단한 상태다. 2∼3년전 의욕적으로 벤처기업에 대해 투자했던 한 대기업 간부는 "새 업체에 대한 투자는 생각하지도 못한다"며 "이미 투자한 기업의 주식을 처분하는데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량벤처에 대한 지원책 마련 시급 벤처기업의 침몰을 막기 위해 모든 기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력이 있는 '우량벤처'에 대한 선별지원이 시급하다는게 벤처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전자지불솔루션 업체인 티지코프의 정정태 대표는 "벤처 위기는 프라이머리CBO 등에 의존해 간신히 목숨을 연명해온 일부 부실벤처기업들을 걸러내는 측면도 있다"며 "벤처기업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M&A(기업인수합병) 제도도 재정비돼야 한다. 벤처기업들간에 사업모델을 강화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M&A가 활성화돼야 한다. 여러가지 규정개정이 이뤄지고 있으나 실제 M&A를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코스닥등록기업인 M사는 올중반께 자사 사업모델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벤처기업을 인수하려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코스닥등록기업에 인수되는 피인수기업은 코스닥 등록요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해외시장진출을 돕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좁은 내수시장에서의 과당경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들이 해외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벤처인큐베이팅사업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지적한다. 또 벤처캐피털업체들이 벤처기업의 '젖줄'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호예수(Lock-up) 제도의 개선 등 여건조성이 필요하다고 벤처캐피털업계는 주장한다. 그래야 투자-자금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캐피털 자금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문권.손성태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