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계식 < 현대重 기술개발본부장.사장 > 한국은 참 묘한 구석이 많은 나라다. 국토면적으로 볼 때는 소국이지만 인구만 놓고 보면 작은 나라가 아니며 경제활동면에서는 교역량이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백대 기업 가운데 한국기업은 지난 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평균 12개가 뽑혔다. 국가별로는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 이어 스위스와 함께 평균 6위를 유지하고 있다. 제품별로는 대형 디젤엔진이 세계시장 점유율 60%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선박용 발전기와 선박추진용 프로펠러도 각각 점유율 55%와 4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조선이 35~45%의 점유율로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반도체와 석유화학 각각 3위와 4위 섬유 4~5위 자동차 및 공작기계 5~6위 철강 6위 초박막액정화면(LCD) 휴대전화기 PC 등 IT(정보기술) 관련산업이 6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업기술 수준은 아직 취약한 상태다. 미국 공학한림원(NAE)이 선정한 '20세기 20대 공학적 성취'라는 자료를 보면 어느 부분에서도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기술자의 한 사람으로서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대목이다. 97년에 발간된 일본 과학기술청의 '기술백서' 내용은 더욱 참담하다. 미국의 기술수준을 1백으로 볼 때 일본은 73 정도인 반면 한국의 수준은 겨우 7로 나와 있다. 한국의 산업발전은 자체 기술에 의한 것이 거의 없고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도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생산 장비를 수입하여 제작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방법에 의한 성장에도 한계가 왔다. 몇 년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경제연구소나 경제단체 등에서 발표된 보고서 등을 종합해 보면 국내 경제의 핵심문제는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일등상품이 부족하다'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일등상품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결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기업이 앞장서서 노력해야겠지만 정부와 사회가 이를 뒷받침해야 하고 선진국처럼 산업계와 정부.사회 및 교육계간 역할분담이 분명해야 한다. 산업계는 핵심 역량을 확충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세계 일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는 지식.금융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규제를 정비하는 동시에 산업활동을 격려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교육계는 고급인력의 양성과 기초.기반기술의 연구에 힘써야 한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제성장의 기본이 되는 기초 기술분야를 육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국만의 고육 기술을 되도록 많이 확보해야만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제도 및 의식개혁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의 장래를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망국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풍조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나 사회제도의 개혁은 물론 의식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제도개혁과 연구활동 및 인력양성이 유기적.체계적으로 이뤄질때 한국경제는 경이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