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에 의한 주금 가장 납입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 명동지점은 옛 상업은행 명동지점 시절부터 사채업자들의 불법거래 유혹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던 곳이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94년 상업은행 L지점장 투신자살 사건.당시 L지점장은 돈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채업자에게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발행해 줬다 제때 돈이 입금되지 않아 문제가 되자 자살했다. 사채업자와 거래가 많기는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명동지점의 거액 고객들은 상당수가 사채업자"라며 "은행간 실적 경쟁을 벌이다 보면 사채업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의 명동지점장은 "사채업자들 중에는 거액을 예치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일시에 예금을 빼내가 지점 실적에 타격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채업자로부터의 유혹과 압력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명동지점장은 은행원들이 한번쯤 거치고 싶어하는 영광의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은행 명동지점의 경우 한국에서 땅값(표준 공시지가 기준 평당 1억9백9만원)이 가장 비싼 곳인데다 전통적 금융 중심지인 명동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 은행의 간판 지점으로 통한다. 지난 60년 문을 연 상업은행 명동지점은 주요 증권사 본점이 명동에 몰려있던 70∼80년대 전국 수신액 수위 자리를 다투던 노른자위 지점이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여서 각 은행 명동지점장은 임원 승진 1순위로 꼽혔다. 이인호 신한은행장도 명동지점장을 지낸 뒤 이사대우 영업부장으로 승진했고,손홍균 전 서울은행장도 명동지점장에서 곧바로 이사가 됐다. 한편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 전에도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잇따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 올 하반기에만 우리은행에선 △인천 주안지점 직원 18억원 횡령 △화정지점 직원 1백억원 가짜수표 발행 △부산지점 쌍용 무역금융 사기 연루 등 사고가 이어졌다. 지난 99년부터 올 6월 말까지 발생한 1억원 이상 금융사고액에서도 우리은행은 1천3백69억원으로 은행들 중 가장 많았다. 이를 두고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사고 소식만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