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가 다우기준 4년전,나스닥 기준으로는 6년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증권맨들은 10년후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최근 증시 폭락으로 인한 마음고생으로 한꺼번에 10년은 더 늙어버렸다는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다. 세계금융의 심장부로 젊음과 활력의 상징이었던 월스트리트가 어느덧 붕괴된 세계무역센터(WTC)처럼 쓸쓸한 잿빛의 건물군으로 변하고 있는 느낌이다. ◆증권맨들의 '의·식·주'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지난해 9·11테로로 붕괴된 맨해튼 남단 WTC 자리. 맨해튼을 남북으로 잇는 지하철과 허드슨강 밑으로 뉴저지를 연결하는 '패스'란 이름의 지하철이 만나는 뉴욕시내의 교통 요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있는 월스트리트는 걸어서 10분 정도. 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트레이드룸이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있는 세계금융센터(WFC)도 5분이면 갈 수 있다. 때문에 오전 7시부터는 지하철로 출근하는 증권맨이나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 모습이지만 올 가을에는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옆구리에 가방을 하나씩 낀 증권맨들의 복장이다. 닷컴 열기와 함께 증시가 활황가도를 달리던 1990년대 후반부터 이들의 공식근무복은 '캐주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캐주얼'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정장 차림이다. NYSE 옆 건물인 골드만삭스 본사로 출근하는 주식 딜러 마크 카론(35)은 "지난 봄부터 회사측이 정신 재무장 차원에서 정장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이제 캐주얼 복장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복장(의생활)만 바뀐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계 ING파이낸셜마켓에 근무하는 애널리스트인 로버트 무어(38)는 지난 여름부터 회사내의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아침 식사는 회사측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지난 8월부터 아침식사가 유료화됐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끓여먹는 것은 자유지만 설탕과 프림 등 재료는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회사가 지원하는 저녁 회식도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주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대량해고로 언제 해고의 칼날이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돈이 들어가는 주택구입에 나서기 어려운 탓이다. 시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증권사 직원들의 경우 가장 먼저 구매를 계획했던 주택계약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증권사는 대량해고와 함께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메릴린치 CEO인 스탠리 오닐이 국내출장을 가면서 평소 타던 1등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타 월가의 화제가 됐다. 증권사들이 영업상 필요한 출장을 줄일 수는 없지만 대신 경비를 최대로 절감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실제 월가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국내외 출장에서 가장 싼 비행기 좌석을 끊고 있다. 미국의 대형 항공사들이 파산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제트블루 등 디스카운트 항공사들이 반짝 특수를 누리는 것은 바로 증권사들의 '좌석 다운 그레이드'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의 한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골프나 회식 등을 접대하는 사치성 소비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월가의 감원공포도 여전히 남아있다. 증권사마다 같은 부서 안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 보직을 점점 축소하고 있어 모든 사람이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다. 메릴린치의 한 애널리스트는 "요즘에는 해고 통보가 e메일 한통으로 이뤄진다"며 "아침에 e메일을 체크할 때 발신인이 직속 상관인 메일이 들어있으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물론 그동안의 대량 감원 덕에 최근 들어 조금씩 경영실적이 좋아지고 있어 일부 증권사에서는 연말 보너스도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월가의 전반적 분위기를 밝은 모습으로 바꾸려면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란 게 증권맨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육동인 뉴욕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