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시장에 너무 많이 풀린 부동자금을 어떻게 환수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콜금리를 올리거나 총액한도대출 등을 줄이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한은은 일단 은행들에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가계대출 자제 등을 요청했지만 은행들은 한은과 다른 상황인식을 보이고 있다. 가계대출 너무 는다 =한은은 3백53조원(올 8월말 현재)의 단기부동자금의 주 공급원을 가계대출로 보고 있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리면서 풀린 돈이 고수익 대체투자를 노리고 대기중이란 분석이다. 가계대출 증가율을 보면 지난 2000년 전년대비 37.7%, 작년엔 44.7%였던 것이 올 상반기엔 52.1%까지 뛰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말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백93조2천억원으로 2백조원에 육박했다. 지난 8월말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보험 등 제2금융권의 개인대출분까지 포함하면 약 3백80조원의 돈이 가계에 풀려 있다. 부동산 값이 잡히지 않고 은행들의 대출경쟁이 잦아들지 않으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증가액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70%를 넘는다는게 한은 설명이다. 결국 금리 올려야 =한은은 단기부동자금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콜금리를 올리거나 총액한도대출을 줄여 은행 대출을 억제하는 두 가지 방안을 강구중이다. 그러나 모두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콜금리를 섣불리 올렸다간 국내경제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 총액한도대출 축소도 중소기업만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박승 한은총재가 17일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숙의한 것도 그같은 고민을 반영한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은행장은 "한은은 은행들이 먼저 나서 가계대출을 자제해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이나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기업대출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장사할 곳은 가계대출 뿐인데 그걸 줄일 은행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은행장은 "이런 때는 한은이 나서야 한다"며 "한은이 콜금리를 올리거나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등 먼저 움직여야 은행들도 따라서 행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공은 다시 한은으로 넘어온 셈이다. 한 은행장은 "시중에 풀린 돈이 문제라면 그걸 흡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며 "그건 한은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의 행보가 주목된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