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직을 16년째 맡고있는 앨런 그린스펀이 금리 정책을 미숙하게 운영함으로써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증시도 소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미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 지지론자들은 그가 재임하는 동안 불과 두 차례의 완만한 경기 침체만 있었을 뿐이며 인플레도 진정되고 성장도 꾸준히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만하면 그린스펀이 직무를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본인도 최근 열린 FRB 심포지엄에서 증시`거품' 제거를 위해 앞서 고금리 정책을 취했더라면 미 경제가 지금쯤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그린스펀은 오는 12일(현지시간)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금리 정책을 거듭 옹호할 예정이다. 그린스펀 비판론자들은 FRB가 지난 90년대말의 호황기에 사의적절하게 고금리정책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증시 거품을 유발시켜 결국은 월가에서 무려 7조달러가 증발하는 파국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FRB가 지난해 뒤늦게 잇따라 금리를 내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먼은 "그린스펀이 당시 너무 몸을 사렸다"고 최근 비판했다. 증시 거품을 적정 수준에서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이 90년대의 미 경제 호조기에는 `영웅'이었으나 10년여의 호경기가 지난해 3월 막을 내리면서 `역적'으로 급전직하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FRB 이사회 멤버였던 릴리 그램리는 "경기가 좋을 때는 사람들이 그린스펀을 영웅시 했으나 투자손실에 허덕이게되자 일제히 그를 손가락질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는데 모두 미숙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판론자들은 FRB가 지난 90년대말 증시 투기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시점을 놓친데 이어 2000년에는 너무 신용경색기를 오래 가져 결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 실수를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지난 50-60년대 무려 19년간 FRB 의장을 역임한 윌리엄 마틴에 이어 두번째로 장수하는 FRB 사령탑인 그린스펀은 지난 90-91년의 경기 침체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비판은 지금처럼 경제학자들이 아닌 주로 행정부 내에서 나온 것이 특징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 측근들은 92년의 대선을 앞두고 그린스펀이 금리를 대폭 내려주길 기대했으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음으로써 결국 부시가 빌 클린턴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는 원인의 하나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부시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측은 그린스펀과 통화 정책에서 순조롭게 공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폴 오닐 재무장관은 FRB가 금리를 지난 4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대해 거듭 만족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러나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한 상황에서 백악관이 아닌 의회 쪽에서는 민주.공화당을 가릴 것 없이 금리를 더 내려 성장을 부추겨야 한다는 견해가 여전히만만치 않다. 그린스펀은 오는 12일의 청문회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그간의 증시 과열과 관련해 그린스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경제학자 헨리 카프먼 같은 이들은 FRB가 증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비롯한 여러 방편들을 갖고 있다면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금융 자금을 차입해 주식을 매입할 때 일정액의 현금은 남기도록 강제하는 주식 증거금 등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린스펀이 한때 증시 진정을 위한 본격적인 개입을 고려했으나 지난 96년 12월 `개입의 적절한 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에 대한 논란이 비등해지자 발을 뺀 것으로 판단한다. 이달안에 그린스펀과 FRB의 정책에 관한 세번째 저서를 낼 예정인 데이비드 존스는 "그린스펀이 증시에 본격 개입할 경우 이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는 전세계의 투자자들이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러느냐'고 반발하면 난감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지지론자들은 90년대의 호경기에 그린스펀이 금리에 손대지 않은 주요 이유가 미국의 생산성이 향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옹호했다. 그린스펀이 호경기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정책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률이 한때 30년 사이 가장 낮은 3.9%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실업률이 6%에 육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들은 그린스펀이 당시 증시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했더라면 노동시장이 경색돼 호경기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분석가를 지낸 마이크 무사는 "그린스펀이 FRB 의장에 재임하는 동안 두차례의 불경기가 있었으나 강도가 심하지 않았다"면서 "인플레도크게 진정됐고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보다는 경제 성장세가 완연한 것이 현실"이라고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그린스펀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