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31일 발표한 '2002년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은 지난해 재계의 대기업규제 개선요구에 따라 공정거래법이 대폭 개정된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지분'도 없이 '지배'만 있는 경영구조 ▲총수일가의 순환출자를 통한지배 ▲여전한 대규모 출자총액초과 등 발표때마다 나타나던 현상이 그대로 재연돼"아직 뚜렷한 개선효과가 없다"는 공정위의 판단이 내려졌다. ◆ 총수지배 '지렛대효과'가능성 더 커져 19개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 지분율은 지난해 3.2%에서 5.1%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동일인이 법인인 한국전력, KT 등 대형 공기업 7개가 통계에 포함되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일 뿐 12개 재벌총수의 지분율은 1.7%로 오히려 낮아진 반면,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율은 41.6%로 지난해보다 1%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각 재벌총수들이 계열사 대부분의 이사가 아니고 지분을 모두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계열사 사장단회의'등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계열사지분을 이용한 총수지배의 '지렛대 효과'가 더 커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제한대상 12개 기업집단중 총수가 그나마 평균치를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는 SK,현대차,한진,현대중공업,한화,동부로 절반 정도였고 부채비율 200%미만으로규제대상에서 빠진 롯데 역시 0.69%였다. 영위업종수에서도 12개 재벌이 평균 19.2개 업종을 영위, 지난해 18.8개보다 늘어나 '문어발'비판 역시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공정위 주순식 독점국장은 "민간기업집단의 경우 내부지분율, 영위업종에서 큰변동이 없었다"며 "동일인이 계열사 출자를 바탕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구조의 왜곡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 전체 기업 75%가 미공개..외부감시 원천불능 재벌의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추진된 개혁의 핵심은 '시장을 통한 감시'였다. 그러나 이들 12개 재벌의 321개에 달하는 계열사중 공개된 회사는 25.23%인 81개사에 불과했고 이들 회사의 자본금은 2조5천674억원으로 총자본금 4조108억원의 43.2%수준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원천적으로 시장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상황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공개기업비율이 낮아도 이 기업들이 대부분 그룹주력의대형 기업들인 반면, 비공개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주요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총수나 일가가 비공개 소규모 기업의 압도적 지분을 보유한 뒤 이 기업을 출발점으로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소규모 기업에 집중된 기업비공개는 곧바로 '총수지배구조'에 대한 시장감시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 출자총액감소는 매각보다 계열분리.합병.지주회사전환 덕분 5월 계열분리된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11개 재벌의 출자총액규모는 29조6천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9조4천억원이나 줄었다. 그러나 이는 매각 등을 통해 실제 과다한 출자액이나 계열사를 해소한 것이 아니라 ▲현대중공업.하이닉스의 현대계열분리(3조8천억원)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합병(3조1천억원) ▲LG화학의 지주회사 LG CI전환(1조5천억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 제한초과분을 상당분 해소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실체는 그대로 남았거나 타의에의해 해소된 셈이다. 주식을 매각한 경우는 LG(9천억원), SK(5천억원), 현대차(4천억원)로 소규모에그쳤고 이들 기업은 대신 1조3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고 7천억원어치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 초과분 3조4천억 어떻게 처리하나 그러나 5조9천억원의 적용제외인정과 7조1천억원의 예외인정에도 불구, 12개 제한집단중 삼성, LG, SK, 한진, 현대, 금호, 한화, 두산, 동부 등 9개 기업집단이 3조4천480억원(취득가 기준)의 법위반 출자총액초과분을 기록했다. 회사별로는 SK가 2조1천7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LG(4천330억원), 금호(3천470억원), 현대(2천350억원)순으로 많았다. SK가 대규모 초과현상을 보인 이유는 통신업종과 무관한 SK㈜와 SK글로벌이 SK텔레콤의 주요 주주인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SK관계자는 "양사가 SK텔레콤지분 8천억원어치 가량을 해외매각해 초과분은 1조3천억원만 남아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내달중 초과분에 대해 법위반 최종판정을 내려, 새 법이 규정한대로해당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명령'을 내리고 구체적 제한대상을 공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도초과분의 상당액이 비상장.비등록계열사여서 재벌들이 비상장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포기하고 상장사 의결권을 제외해 의결권제한제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같은 상황이 예상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규제할 방법은없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