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실회계 파문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회계법인 바꾸기'에 나서고 있다. 외부 감사기관을 교체해 분식회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없애는게 그 목적이나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제록스는 지난해 10월 대형 회계법인 KPMG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주가 부양을 위해 매출을 부풀려온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제록스는 대신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손을 잡았다. 반면 얼라이드 아이리시 뱅크스는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자 PwC를 버리고 KPMG를 선택했다. 달러 제너럴과 PNC 역시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 기업들. 대상이 딜로이트&투치와 언스트&영이란 점만 달랐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굴지의 회계법인들이 모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나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감사기관이란 사실. 상장기업들에 대한 부실감사로 투자자들로부터 피소돼 하나같이 몸살을 앓고 있는 점도 닮은 꼴이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동지'였던 아더앤더슨이 부실회계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자 회계사들을 빼오는 데 혈안이 됐다. 앤더슨을 제외한 나머지 '빅4'는 이미 앤더슨 출신의 회계사 6백90여명을 고용했다. 앤더슨에서 떨어져나간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언스트&영은 모두 2백30명의 전 앤더슨 회계사들을 영입했다. 결과는 대성공. 1백10여개에 달하는 앤더슨의 고객사들을 끌어왔다. KPMG와 딜로이트&투치는 각각 2백여명의 앤더슨 출신을 '모셔왔다'. PwC도 최근 60여명의 앤더슨 전 직원들을 채용,'반짝 특수' 잡기에 한창이다. 앤더슨 출신이 새로운 회사에서 맡는 임무는 주로 전 고객사를 관리하는 일. 이에 따라 일부에선 "부실회계 파문 이후 달라진 점이라곤 회계사들의 명함에 박힌 회사 이름뿐"이란 자조 섞인 농담도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규모는 작지만 건실한 외부 감사업체와 손을 잡는 것을 꺼리고 있다. 소규모 회계법인의 경우 다국적기업이 필요로 하는 해외 네트워크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 작은 회계법인들이 고객사 감사와 관련,투자자들로부터 피소될 경우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도 기업들의 발길을 대형 회계법인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SEC의 전 수석 회계사였던 린 터너는 "외부감사업체가 고객사를 새로 유치하면 보통 회계장부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객사와 유착되면서 이같은 문제점도 점차 사그라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장의 신뢰 회복은 의회와 부시 행정부가 회계법인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감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회계감사 업계는 정부의 감독 강화가 고객사의 이익마저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며 아우성이다. SEC와 법무부 조사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들의 낯뜨거운 '부실 경쟁'. 일부 기업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같은 경쟁에 춤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