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새천년관에서 지난 14~15일 열린 '세계화 시대의 국제협상력' 국제 학술대회에는 후버연구소 아시아재단 등 국내외 협상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한국의 국제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하고 연세대 국제학연구단이 주최한 이번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외환위기 당시의 외채 만기 연장 협상과 대우자동차 하이닉스반도체 현대투자신탁증권 등 구조조정기업의 해외 매각협상 과정을 집중 분석, '한국식 협상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유연한 자세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이닉스 등 일련의 국제협상에서 한국 협상팀의 태도는 장기적 국가 이익보다는 경제관료와 유권자들의 압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음은 주제발표 요약. ◆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연구위원 =한국은 위기 상황이 닥쳐야 협상에 임하는 특이한 관행을 가졌다. 국제협상에서 외부 당사자와 합의점을 찾는 것보다 내부 집단의 이견을 조율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협상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 국가 이익과 단기적 이해관계 분쟁을 조정할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협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해 오직 한 쪽만이 승자라고 보는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 '타협과 양보'를 패배로 여기는 문화는 협상에 장애가 된다. 한국 언론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국익과 관련된 문제를 놓고 사실보다는 감정에 근거한 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 이는 협상 자체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 김석우 서울시립대 교수 =점점 늘어날 국제협상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 학계 정부 등 각 분야 협상 전문가들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범국가적 차원의 종합적 검토와 자문의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식 협상법'을 개발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이 특정한 협상방식을 적용한다는 점을 상대국가들에 널리 알린다면 협상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 존 오델 남가주대 교수 =국제협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각국간 의견 차이로 협상이 종종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문화적 상이성과 국력의 차이,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차이 등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국가간 협상에서는 협상 참가자들이 엄격한 '가치 추구적' 전략에서 벗어나 '가치 창조적'인 유연한 자세를 가질수록 교착상태를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경제문제 협상에서 합의사항보다 '시장'에 맡기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국민이 판단하게 되면 협상결과에 대한 저항은 커지게 마련이다. 협상팀은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1980년대 한국이 신흥 산업국가로 등장하면서 시장개방 압력도 높아졌다. 우루과이라운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협상,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 등을 거치면서 한국도 과감한 시장개방 정책을 펴왔다. 이제는 농업과 서비스 분야에서만 무역장벽이 남게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보호무역주의가 지지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제로섬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무역협상이 가져오는 상호이익을 잊고 있다. 정부 부처들 중에서도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정도가 무역 자유화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내부 갈등을 해결해 협상에 내세울 대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경부는 무역 관련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역 관련 논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잘 조직돼 있다. 자유화의 비용은 단기간 소수에 집중된 반면 이익은 장기간에 걸쳐 다수에 분산된다. 그러므로 잠재적 수혜자보다 피해자들이 조직적으로 단결할 유인을 갖는다. 국제 통상 협상이 난항에 빠지는 것은 이들 세력이 그만큼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수준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이 절실하다. 무역 개방으로 인해 직접적 손실을 입는 사람들에 대한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보상정책도 함께 시행돼야 한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