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경영(self management)'이 유행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고실업률 시대, 노동력 잉여시대의 파고를 넘기 위해선 스스로를 단련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모두들 갖고 있다. 히딩크의 축구 경영이 개인에게 주는 교훈은 뭔가. 멀리 보는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굳게 믿자는 비전 중심의 시각이다. 내일, 다음달, 내년이 아니라 5년뒤, 10년뒤, 20년뒤를 내다보고 그걸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리자는 제안이다. 히딩크는 취임 초기부터 '월드컵 첫승'과 '16강'에만 목을 매는 단견을 경계해 왔다. 이기고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지만 장기적으로 세계 정상급 팀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한번' 내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그의 프로그램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체력 정신력 등 기본 훈련은 생략되고 이미 검증받은 선수들만 뽑아 전술훈련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팀으로 한단계 점핑하기 위해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했다. 그런 판단하에 그는 체력, 정신력, 팀워크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한가롭게 기본기 훈련이냐"는 딴지걸기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이런 장기비전과 신념 덕분이었다. 비전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막연히 "뭔가가 되고자 하는 희망"으로만 비전을 해석해선 그 효용을 느낄 수 없다. 비전은 오히려 실행계획과 과제를 명확하게 도출해낼 수 있어야 의미를 갖는다. 5년뒤, 10년뒤, 20년뒤에 도달할 점을 내다보면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유지가 담긴 지도를 그릴 수 있다. 그 경유지들이 바로 실행계획이 된다. 그리고 그 경유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가 명백해진다. 자기 계발의 출발점은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작업인 것이다. 비전이 주는 힘은 또 있다. 바로 확고한 자기 신념이다.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지도를 갖고 떠나는 이는 믿을 것이 있다.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두렵지 않다. 도착할 지점을 알고 믿고 있기 때문에 도전도 두려워 않는다. 히딩크는 나름대로는 이미 '이룬' 사람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선수 생활도 했고 감독으로서는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돈도 충분했다. 자신이 이끄는 네덜란드팀에 5-0으로 진 한국팀의 감독으로 부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를 미쳤다고 뒷소리를 했다. "1승도 못 올리면 당신의 명성도 끝장"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어찌 없었을까. 그런 점에서 그에게 한국팀 감독 부임은 위험감수(risk taking)의 모험이었다. 그의 이런 도전적 자기 경영 철학은 대표팀을 이끄는데도 중심축이 됐다. 놀라울 정도의 자신감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여유를 보면 특히 그렇다. 비전 공유를 통해 이뤄진 강한 동기와 참여의식은 한국 팀이 미래형 조직 모델이라는 'Z형 조직'에 가깝게 변한 비결이기도 했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한가지 있다. 취임 초기 평가전에서 부진해 여론이 그를 흔들었을 때 축구협회도 덩달아 그를 흔들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히딩크는 낙마했을 것이고 신화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정몽준 협회장이 "히딩크 체제로 월드컵까지 간다"고 했을 때 히딩크는 더 큰 힘을 얻었다. 히딩크는 중요한 단 한번의 승리로 기업 조직 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배울만한 리더십 모델로 떠올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혁신 노력, 개선노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문화요 풍토다. 만능이고 결점없는 사람으로 히딩크를 보고 있는게 아니다. 그가 멀리 보고 굳게 믿는 태도로 위험에 도전한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장미(悲壯美)가 월드컵경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기를 비는 것이다. 우리도 함께 꿈꾸고 함께 믿고 함께 도전하기 위해서. < yskw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