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면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의 주요국에 대한 경쟁력평가 보고서가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이번에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1단계 올라간 27위로 나타났지만 부문별로는 많이 오른 곳도 있는 만큼 관계부처는 홍보에 열심이다. 기획예산처는 '정부행정의 효율성'에서 작년보다 6단계나 올랐다며 자랑하기에 바빴고 과학기술부는 더 흥분했다. '과학인프라'평가가 작년에 비해 무려 11단계나 상승한 10위로 나타났다며 한국의 과학경쟁력이 세계 '톱 10'에 랭크됐다고 힘을 주고 있다. 도대체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설명의 편의상 과학경쟁력 평가를 보자.결과에 대한 반응부터가 재미있다. 현장에서는 단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다. 마치 통계적 물가지수와 체감적 물가지수간의 괴리같다는 표정이다. 작금의 과학기술 위기론과는 너무 차이가 있는데다,다른 것도 아닌 과학인프라가 하루아침에 11 단계나 뛰었다니 이런 반응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도 그렇다. 자랑한 것까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말못할 고민에 빠졌다. 엊그제만 해도 10대 과학선진국 진입이 목표였는데 이게 달성됐으니 계획과 정책을 깡그리 수정해야 할 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데도 말이다. IMD 평가는 정말이지 '평가의 한계'를 알지 못하면 '해석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과학인프라 평가만 봐도 적어도 4가지 함정이 있다. 무엇보다 IMD의 평가는 대개 '과거에 대한 그림'이다. '2002년 경쟁력 평가'라고 하지만 통계치가 2000년 기준이거나 심하면 97년 혹은 99년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으로 스톡(stock)과 플로(flow)의 차이다. 스톡의 성질이 있는 과학인프라에는 누적적(累積的) 효과나 리드타임이 있지만 IMD 평가기준은 이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양과 질의 차이도 있다. 투자나 인력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있어도 이들에 대한 질적 평가는 고스란히 빠져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류체계상 함정이다. 과학경쟁력을 따질 때 함께 고려해야 할 다른 기준들이 흩어져 있다. 기술협력이나 IT는 기술인프라에,인력공급 산학협력은 정부효율성 부문에,두뇌유출 인력가용성은 기업효율성 부문에 각각 포함돼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한마디로 흥분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참고 자료로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혹시라도 이번 평가로 정작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도 간과한다면 IMD평가는 차라리 독(毒)일 뿐이다. 논설ㆍ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