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천국' 日 실패사례 ] 한국과 일본의 정치관련 제도는 닮은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법률 만능주의에 함몰돼 국회의원들을 죄다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입법은 더더욱 그렇다. 대표적 사례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이다. 일본의 선거법에는 호별방문은 물론 인터넷을 활용한 정견발표도 금지돼 있다. 선거 운동기간도 한 달이 채 안될 정도로 짧다. 자민당의 2선의원인 고노 타로 의원은 "18만 가구인 지역구에 나눠줄 수 있는 유인물 숫자가 이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게다가 '읽고 난 다음 옆사람과 돌려보라'고 부탁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고 불만이었다. 그는 후보들은 선거법의 '구멍' 찾기에 혈안이 돼 있으며 뭘 하든지 선거법에 걸면 위반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평소에 선거사무실과 비서들을 통해 득표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의원들은 많은 참모들을 거느려야 되고 자연스레 고비용 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책위 의장직을 맡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 의원은 "정치자금법에 빠져 나갈 구멍이 꽤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법과 현실이 철저히 따로 노는 데는 감독관청인 선관위측과 법집행기관의 책임이 크다는게 일본 의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고노 의원은 "선거가 끝난 뒤 비용지출 내역을 선관위에 제출할 때 비용이 한도를 초과하면 선관위가 '이 부분은 고쳐주십시오'라고 얘기한다"고 털어놓았다. 선거관련법 위반혐의로 고발해야 할 관청이 고발을 회피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셈이다. 오카다 의원은 "식사 접대를 하면서 돈을 뿌리고 다니는 여당 의원들을 신고해도 경찰이 좀체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법집행의 불공정성을 고발했다. 고노 의원과 더불어 자민당 내 대표적인 소장개혁파로 분류되는 야마모토 참의원(재선)은 '규제천국' 일본의 모순을 꼬집없다. 그는 "은행 불량채권 등 일본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룰을 정해도 지키려고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지킬 수 없는 법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90년대 중반 파벌보스를 겨냥해 마련된 일부 규제는 일본의 정치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자금 공개규정이 대표적 케이스이다. '자민당의 황태자'라고 불리던 가토 이치로 전 간사장이 이 규정에 걸려들어 낙마하기도 했다. 공개규정은 일본 의원들의 젖줄 '파티입장권'(1회 순수입 약 1천만엔)에도 적용된다. 파티입장권을 5만엔 이상 구입한 회사의 명단은 모두 공개해야 한다. "회사의 주주총회나 임원회의 등에서 5만엔 이상의 파티입장권을 매입한 경위를 따지게 되기 때문에 웬만한 기업이 아니고는 그 이상 사지 않는다"는 것이 고노 의원의 설명이다. 정치평론가 요시다 신이치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에 비하면 정치자금 관련 규정은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돈과 관련된 부패스캔들이 정치가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치명적인 것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