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금융비리의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책은행으로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남용한 결과다. '수익 위주 경영'에 집착한 나머지 실무자들 사이에 편법을 써서라도 수익만 올리면 된다는 '도덕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9일 발표한 '삼애인더스 해외전환사채(CB) 인수건'이 국책은행으로서 '힘의 남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산은의 실무자들은 자체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편법적으로 해외CB 발행을 도왔다. 또 통상 채권거래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사전매입약정을 맺으면서 삼애인더스 주식 30만주에 대한 반환청구권,KEP전자 발행 당좌수표 1백3억원 등을 담보로 받았다. 산은이 해외CB 인수대가로 자체 보유하고 있던 1백만달러어치의 한국디지탈라인(KDL)해외CB를 이씨에게 판 과정은 더욱 충격적이다. 당시 KDL은 부도상태로 CB가격이 액면가의 15%까지 떨어졌지만 산은은 액면가의 50%를 받고 이씨에게 넘겼다. 산은의 해외CB인수가 편법적인 행위였음은 분명하다. 더욱이 부도난 회사의 CB를 시가보다 높게 판 사실은 산은이 관행적으로 거래상대자에게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왔을 개연성을 의심케 한다. 최근 임원을 비롯한 실무자 2명이 벤처투자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과 맞물려 더욱 우려스런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이같은 편법적인 행위가 만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은은 결코 손실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뇌물을 받은 기업에 투자했던 자금이 수백%의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산은이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가 벤처기업들에는 '유망 종목'이라는 보증수표가 됐기 때문이다. 은행에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약간의 편법'은 눈감아줄 수 있다는 도덕불감증이 은행 경영진이나 실무자들 사이에서 팽배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