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탄력적 근무시간제가 도입되고 근무복장이 자율화되는 등 기업문화가 급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층과 직원들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막힘없는 의사소통에 근거한 신뢰경영이야말로 안정적인 노사관계와 무리없는 구조조정을 가능케 하는 지름길입니다" '신뢰경영'의 주창자인 세계적 경영컨설턴터 로버트 레버링은 신뢰경영의 효과를 이같이 강조했다. 신뢰경영에 나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하기 좋은 일터 만들기'를 제1의 경영목표로 삼으라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 자신이 개발한 신뢰지수를 적용해 한국에서도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레버링은 28일 국내 기업의 근로조건 및 노사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남홍 부회장과 대담을 가졌다. △ 조남홍 경총 부회장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1백대 기업'을 선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지요. △ 로버트 레버링 =기본적으로 두가지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직원들의 의견을 설문조사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기업의 관리정책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경영층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가 전체 점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정책이나 관행이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두가지를 종합한 점수를 근거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합니다. △ 조 부회장 =그런 설문조사를 통계학적으로 연구해 신뢰지수를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뢰지수의 핵심 구성요소는 무엇인지요. △ 레버링 =지난 80년초 미국의 1백대 일하기 좋은 기업을 책으로 발간했을 때 상위 20개 기업에 포커스를 맞춰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20개 기업 중에는 IBM HP 페덱스도 포함됐습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인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 종업원 창업자 경영층을 대상으로 연구했습니다. 특히 이들 기업의 종업원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어요. 종업원들은 처음에는 일에 대한 만족감에 국한해 얘기했으나 갈수록 경영층과의 관계,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를 얘기했습니다. 다시 말해 맡은 일에 대한 자긍심, 경영층과 직원들의 신뢰,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는 동료애를 강조하더군요. 신뢰지수는 이 세가지를 핵심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 조 부회장 =지금까지 한국에선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한 사례가 없습니다. 다만 상장사 1백대 기업을 선정해 서열을 매기거나 주가수익률을 비교하곤 합니다. 아주 기계적인 방법이지요.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선정한 1백대 기업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회사나 자신의 발전가능성을 굳게 믿고 있었고 급여등 복리시스템도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여겼습니다. 어쨌든 레버링씨가 개발한 신뢰지수가 기업경쟁력과 얼마나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높은 신뢰지수가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라고 봐도 되는지요. △ 레버링 =경영층과 직원들간 신뢰관계가 높을수록 경쟁력이 높습니다. 신뢰관계란 특별한게 아닙니다. 경영층과 직원들의 의사소통수준, 종업원들이 제시한 아이디어에 대한 경영층의 관심도, 회사가 직원들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는 수준에 따라 신뢰지수가 다르게 나타나지요. 지난 10년간 전세계 2천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뢰지수를 조사했습니다. 작년에는 포천 1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신뢰관계와 직원들의 헌신도를 조사했는데 상관관계가 아주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뢰지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고 가장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신뢰관계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높은 신뢰관계는 강한 팀워크를 만들어내고 직원들을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지요. △ 조 부회장 =한국기업들의 노사관계는 그다지 선진화되지 못했습니다. 노사불화의 주된 이유로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이 많이 지적됩니다. 서로 불신하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미국도 과거 노사관계가 순탄치 않았을 땐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을텐데요. △ 레버링 =정확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과거 미국에서도 철강, 자동차 노사가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사협력이 없다면 회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절박한 인식이 점차 확산됐지요. △ 조 부회장 =한국의 노사관계엔 다소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가 개입되고 있습니다. 무조건 형평성을 들어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나 그렇지 않은 직원이 모두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등의 인식이지요. △ 레버링 =일과는 관계없는 정치적인 요구만 하게 된다면 회사 전체가 어려워집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란 기업은 지난 98년 일하기 좋은 1백대 기업반열에 올랐었는데 한때는 노사관계가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일하면 회사와 자신涌“?이익이 되는지를 노조가 깨닫게 됐습니다. 회사와 직원이 함께 공통 비전을 모색했지요. △ 조 부회장 =한국은 IMF관리체제로 편입된 이후 민간기업 공기업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의 급물살을 탔습니다. 일하기 좋은 미국의 1백대 기업은 이런 구조조정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 레버링 =시스코시스템즈 에질런트 찰스슈왑 등이 그런 문제를 훌륭히 극복해 낸 대표적 기업입니다. 포천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백대 기업중 20∼25%가 해고등의 뼈아픈 구조조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세 기업 역시 대량감원을 단행했지요. 그러나 세 기업은 다른 기업들과 다른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내부적인 의사소통이 원활했던 것이지요. 종업원들이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이슈에 대해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인력감축이 단행되지 않으면 안되는지 모든 정보가 집중적으로 제공됐습니다. △ 조 부회장 =한국정부는 기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EO(최고경영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기업경쟁력이 결정되지요. 기업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CEO의 덕목과 자질은 어떤 것이라고 봅니까. △ 레버링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면 경쟁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는게 CEO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직원들과 거리낌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고 그들로부터 협력과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해 일상적으로 노력하는게 바람직한 CEO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천 1백대 기업의 창업주와 CEO 대부분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은 훌륭한 일터만들기를 주요 경영목표로 삼고 있더군요. 일하기 좋은 일터 조성은 급변하는 기업환경속에서 CEO가 해야 할 막중한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조 부회장 =디지털시대에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은 어떤 기업문화적 패턴을 보이는지요. 한국의 경우 격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 레버링 =미국은 훨씬 이전부터 그런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은 기업내의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요소들을 없애는 노력을 해 왔지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근무복장을 자율화한다고 해서 덜 권위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기업문화 변화보다는 경영층과 직원간 또는 직원들 상호간 실질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