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상징인 마르크화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약 한달이 됐다. 마르크화의 퇴장과 유로화 단일 통용은 독일경제와 사회에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의미한다. 지난 12년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통일 후유증을 극복해온 '베를린 공화국'은 이제 유럽최대의 경제력을 앞세워 유럽연합(EU) 통합이라는 거대한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현재 경기침체의 여파로 '저성장 고실업'이란 고질병이 악화되고 있고 이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는 EU국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유럽경제의 견인차를 자부해온 '유로엔진' 독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로화 실생활 통용 3개월을 맞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새 독일'의 현재와 미래를 현지 취재를 통해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베를린은 공사중'(Berlin is under construction). 요즘 베를린 하늘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를 보아도 공사용 대형 크레인이 눈에 띈다. 특히 베를린의 중심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알렉산더광장까지의 운터 덴 린덴가와 프리드리히 슈트라세,포츠담 광장,2000년 완공된 연방의회건물 주변은 거대한 공사판을 방불케 한다. 베를린이 1991년 통일시대의 수도로 결정된 이후 지속된 정부청사와 외교공관의 건설도 마무리 작업중이다.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은 현재 동서독의 차이를 뛰어넘어 유럽의 심장부가 되기 위한 도시 재정비 사업이 한창이다. 독일정부는 통일 이후 베를린에 지금까지 약 2백억마르크(10조원)의 이전비와 약 9백10억마르크(46조원)의 재건비용을 베를린에 쏟아부었다. 베를린에는 현재 미국 워싱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1백60개의 외교공관이 들어서 있다. 베를린시 도시계획과의 니콜라우스 프롬로비츠는 "도시 재개발 계획이 상당부분 진척됐다"며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려면 향후 7∼8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시대를 맞아 급변하고 있는 것은 베를린시내뿐이 아니다. 베를린 시민들의 의식 또한 '공사중'이다. 유로가 통용된 지 3개월이 됐는 데도 독일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마르크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경제관련 통계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독일 정부관리들은 최근 수치조차 마르크 단위로 말한다. "유로로는 얼마냐"고 다시 물으면 "마르크의 절반쯤 된다.정확한 수치는 자료를 봐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국제문화협력기관인 괴테인스티튜트에 근무하는 지젤라 린츠는 물건을 사거나 식사를 한후 계산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린츠는 "유로로는 아직 감이 안온다"며 "마르크로 일일이 따져본 후 계산한다"고 말한다. 린츠의 불만은 유로화 통용 이후 모든 게 비싸졌다는 것. 실제로 유료 공중화장실이나 공항주차료,주유소의 자동차 청소기 등은 마르크가격을 그대로 유로로 바꿔 놓았다. 1유로가 약 2마르크니까 무려 1백% 가까이 오른 셈이다. 또 과일과 야채 빵 휘발유 등 생필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정부당국은 "유로화 도입에 따른 물가인상분은 0.2%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물가가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피부로 접하는 고인플레와 당장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유로화 통용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여기에는 유로 통용으로 가속화될 '하나의 유럽'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럽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린츠는 남편이 스페인 사람이고 직장동료인 실비아 카스케는 할아버지가 네덜란드인이라고 강조한다. 카스케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유럽은 결국 하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