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강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에 대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일본, 한국 등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잇따라 제소하게됨에 따라 WTO 분쟁해결 절차와 승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20일부터 미국이 세이프가드 조치의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21일 WTO에제소키로 결정하는 한편 EU, 일본 등 주요 철강국과의 공조를 강화키로 했다. ◆ 제소 배경과 절차 = 정부는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양자협의에서 각각 30%와 15%의 추가관세가 부과될 예정인 판재류와 강관의 경우 수입량을 기준으로 관세쿼터(TRQ) 방식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고 석도강판과 스텐리스 강선에 대해서는 조치의 철회를 요구했지만 이렇다할 즉답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미국이 4월14일까지 양자협의의 결과를 반영한 조치변경 사항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우리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WTO행'을 최종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6일 EU가 미국의 철강 세이프가드에 대해 처음으로 제소한데다 일본도 21일을 전후해 제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판단한 것이다. 일단 WTO에 제소하게 되면 제소국의 협의요청에 의해 30일 안에 미국과의 협상이 개시되고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제소국이 패널설치를 요청하게 된다. 이 기간이 대충 60일 걸리며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패널이 설치되면 분쟁당사자와 중립적 제3자가 참여한 가운데 보통 6개월 정도의 검토과정을 거친다. 이어 판정내용을 담은 패널보고서가 제출되고 2주안에 분쟁 당사자간 합의에 이르면 보고서가 채택되지만 상소를 하게 되면 상소보고서가 다시 작성된다. 이에 따라 협의요청부터 보고서 채택기간까지는 상소가 없을 경우 12개월, 상소할 경우 15개월 정도가 각각 소요되지만 실제 20-24개월 가량 걸리는 예가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6일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제소는 국가별로 하지만 패널설치 단계부터 EU, 일본 등과 공동보조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승소 가능성 있나 = 지금까지 WTO에 제소해 승소하는 비율이 꽤 높았지만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를 미국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점에 비춰 쉽지 않은 싸움이 될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승소 케이스로는 한국산 탄소강관에 대한 판정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미국이 탄소강관 제품의 급격한 수입증가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3년에 걸친 세이프가드를 발동, 2000년 3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데 대해 한국이 같은해 6월WTO에 제소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최종 판정까지 20개월 넘게 걸렸다. WTO 분쟁패널에서 지난해 10월 미국이 패소한데 이어 상소심에서도 미국이 위법판정을 받은 취지는 세이프가드가 수입에 따른 국내 산업에 미친 피해 정도와 일치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벗어나 실제 피해에 비해 과도하게 부과됐다는 점. 또 국내산업에 미친 전체 피해 규모를 조사할 때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의 수입물량을 포함시켰지만 실제 세이프가드 대상에서 두나라를 제외시켜 `패러랠리즘(parallelism)'을 위반한 것도 지적됐다. 이번 세이프가드에서도 NAFTA 국가가 제외됐고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탄소강관 케이스와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때문에 미국내 철강산업의 피해가 수입산 제품 때문에 발생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이번 분쟁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즉, 미국에서는 수입제품 때문에 자국 철강산업이 피해를 봤다는 주장을 굽히지않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미국 철강산업이 자체 구조조정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 팽팽한 설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미국 철강산업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산에 따른 산업피해가 미미했다고 입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들어 승소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