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패커드(HP)와 컴팩간 합병에 대한 주주들의 찬반투표가 임박했다. 창업자 가족과 회사 경영진간의 동조세력 지분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전세계의 이목은 이제 19일과 20일 이틀동안 이뤄질 투표에 쏠리고 있다. 합병을 주도하고 나선 쪽은 HP를 PC사업과 그 주변제품 및 서비스 분야에서 모두 세계 1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호소한다. 하지만 반대쪽은 HP의 수익성 높은 이미징 및 프린팅 사업을 수익성 낮은 PC사업과 바꿔먹는 일이라고 폄하한다. 반면 규제당국과 경쟁기업의 움직임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등 규제당국은 별 논란 없이 신속한(?) 합병승인을 해줬다. 이와 함께 경쟁기업들도 너무나 조용하다. 이런 움직임은 일단 양사간 합병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합병을 둘러싼 '외부적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해소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주주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 1월말 EU집행위원회는 합병이 돼도 IBM 델컴퓨터 후지쯔-지멘스 등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서버 및 프린터 시장에서 경쟁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6일 FTC도 양사간 합병이 PC 서버 반도체 등 관련시장에서 경쟁을 해친다고 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규제당국 입장에서는 당연한 합병승인의 근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 합병기업이 시장에서 '위압적인 거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주들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경쟁기업들이 조용하다는 것도 그렇다. 한때 지멘스가 HP와 컴팩간 합병을 견제했다지만 델 컴퓨터를 비롯 경쟁기업들은 대체로 아무 일도 없다거나 아예 합병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 역시 주주들의 합병가치 평가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 한마디로 합병을 둘러싼 '내부적 불확실성'은 오히려 증폭된 것 같다. 당장은 '부상당한 거인'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합병을 택할지,아니면 이를 무산시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게 됐다. 주목할 것은 이번 합병논란 과정이 던진 메시지다. 그것은 주주들이 그 어느쪽을 선택하고 나서든 PC와 그 주변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에 다다랐다는 인식만큼은 동일했다는 것이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