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통상법 201조에 따라 외국산 철강에 대해 고강도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함에 따라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보호주의가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수입규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철강에 이어 다른 과잉생산 품목도 주요국의 수입규제가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제 막 침체기를 딛고 일어서려는 우리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보호주의 망령 되살아나나= 부시 행정부는 6일 수입 열연강판, 냉연강판, 도금강판 등 대부분의 판재류에 대해 30%, 강관 및 스테인리스 제품에는 8-15%의 고율관세를 각각 부과하고 슬라브에 대해서는 관세할당(TRQ)을 적용하는 자국 철강산업 구제조치를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철강생산국은 당초 국제무역위원회(ITC)가 권고한 구제조치안에 비해서는 다소 완화된 내용이지만 당초 예상했던 수준에 비해서는 강경한 것이라고 판단, 잇따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방침을 천명했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세이프가드 조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세계 철강교역을 저해하는 것으로 국제철강산업의 장기침체를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WTO(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등 범세계적인 자유무역주의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스칼 라미 유럽연합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우리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보호주의의 길을 택한 미국의 결정은 세계 무역시스템의 큰 후퇴"라고 비난했다. 일본과 브라질도 유감을 표시하고 WTO 제소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번 조치와는 별도로 업계의 냉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로 우리를 포함한 20개국의 수입품에 대해 조사를 진행중이며 3∼4월중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판정을 예고하고 있다. 미 행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철강고위급협의를 통해 진행중인 전세계적인 철강 잉여시설 감축 논의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고 주요국의 연쇄적인 세이프가드 발동이 가시화될 경우 보복조치의 악순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실제 EU은 미국의 대체시장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강재 수입규제 방안을 유럽철강협회를 중심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관련, EU 집행부는 지난 1월18일 제3국산 철강수입에 대한 '사전수입감시제'를 실시키로 하고 수입 급증시 세이프가드 발동도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중국, EU,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냉연 및 도금강판에 대한 무역제소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고 아르헨티나(냉연.도금)와 호주(형강)는 이미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산자부 관계자는 "미국의 강도높은 201조 구제조치 시행에 따라 유럽연합 등의 연쇄적인 수입규제로 이어질 경우 세계 철강교역 질서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21세기 자유무역질서의 틀을 짜기 위해 막 출범한 WTO DDA 협상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출전선에 먹구름=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현재 우리 상품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 23개국으로부터 반덤핑 101건, 상계관세 7건, 세이프가드 12건 등 모두 120건의 수입규제를 받고 있다. 이 중 88건은 이미 수입규제를 받고 있는 상태이며 32건은 조사를 받고 있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23건을 비롯해 중남미 18건, 인도 17건, 유럽연합 12건, 남아공 10건 등의 순이며 품목별로는 철강제품이 37건으로 가장 많은데 이어 석유화학 30건, 섬유 21건, 전기.전자 13건 등으로 나타났다. 철강의 경우 미국(18건)과 캐나다(5건), 섬유는 중남미(9건)와 터키(4건), 석유화학은 인도(10건), 전기.전자는 유럽연합(4건) 등에서 많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해 새로 제소당한 건수 27건 가운데 개도국으로부터 피소된 것이 19건을 기록,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32건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관계당국의 분석이다. 올해는 미국, 인도, 중국, 중남미 등지에서 수입규제가 빈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WTO에 가입한 중국의 경우 반덤핑이나 세이프가드 조치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돼 우리 수출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계당국은 보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지난해 새로 제소돼 조사중인 철강제 관연결구류와 재심대상품목인 TV, 3.5인치 마그네틱 디스켓, 팩스기기 등이 관심품목이며 중남미에서는 아시아산 제품에 대한 통관검사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