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5일 미국 철강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1974년에 제정된 미국 통상법 제201조에 따른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라는 칼을 빼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6월5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철강 수입 피해 조사를 지시한 후 9개월만에 발표된 8-30%의 관세율은 미국 철강업계와 노조가 요구한 40%에는 못미치나 ITC 건의안인 10-20%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강수에 다소 허를 찔린 모습이다. 한국, 일본, 브라질, 유럽연합(EU) 등 철강 수출국들은 진작부터 일방적 세이프가드 발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집단 제소 등 강력 대응을 경고해 온 점으로 미뤄 미국이 제시한 120일 동안의 협상 기간에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를 극복할 묘수를 찾지 못한다면 국제 철강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특히 EU는 대미 수출 타격도 문제이지만 최대의 시장을 잃은 세계 철강수출업계가 유럽으로 몰려들어 EU의 생산 기반이 와해될 것으로 보고 세이프가드든 상계관세든 강력한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U가 농산물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품목을 보복 대상으로 택할 경우부시 대통령도 응전이 불가피하고 전면적 무역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적당한 보복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도 EU, 일본 등과 보조를 같이 할 방침이어서 결국은 WTO로 갈 공산이크지만 지난 2000년3월 미국이 한국산 탄소강관에 대해 발동한 세이프가드가 지난달WTO에서 최종 기각된 점에 비추어 한국 등의 승산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평소 자유주의를 부르짖는 부시 대통령이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강수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물론 정치적 압력이 도사리고 있다. 오는 2004년 재선 가도도 그렇지만 상하 양원의 다수당이 걸린 올 가을의 중간선거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판국이고 마침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 버지니아 등의 철강 주산지들이 선거의 향방을 좌우할 최대의 격전지이다 보니 철강업계와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1-2%대에 지나지 않는 수입품 관세율이 대폭 높아지면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기 때문에 지난 4년동안 27개 업체 파산과 종업원 4만4천명 해고 등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업계와 노조는 즉각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자동차, 캔 등 철강수요업계는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보존되는 철강 업계의 일자리 한 개를 위해 일자리 8개를 줄여야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먹혀 들지 않았다. 한국, 일본, EU 등 철강 수출국들은 각국 정부의 보조금 때문에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은 허구이며 국내 업계의 구조조정 실패책임을 다른 나라들에 전가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공박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철강 수출액 67억달러 가운데 11억달러가 대미 수출액이고 이중세이프가드 발동 대상인 16개 품목의 수출액은 6억-7억달러이지만 이번 조치에 따른실제 수출 감소액이 얼마나 되는 지는 변수가 너무 많아 즉각 산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포항제철이 미국내 합작자회사인 UPI에 중간재로 연 1억달러 정도 수출하는 열연 강판이 예외를 인정받은 것은 다행한 일이며 외교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국제 철강 과잉 공급 문제를 해소할 감산 쿼터 배정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다음달 18일 파리에서 열리는 39개 철강생산국회의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