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수입비용을 휴대폰 폴리에틸렌(PE) 등 공산품 수출업계에서 부담토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는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세요"(2001년 3월21일 경제장관 오찬 간담회에서 진념 경제부총리) 실패한 한.중 마늘협상의 여파는 이렇게 정부 역할을 스스럼없이 민간 기업에 떠넘기는 '어처구니없고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이어진다. 이날 아침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 주재로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관계부처 1급 간담회까지만 해도 부처간 이견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안건이 반나절 만에 공식적인 정부 방침으로 정해진 순간이다. '뒤가 구렸던' 정부는 해당 업계의 반발 및 여론의 질타를 우려, 당연히 쉬쉬하며 이 사안이 조용히 처리되길 원했다.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한 충격적인 논의에 대한 거센 비판과 질타는 정부 내부에서부터 제기됐다. "산자부 정통부 등 관계 부처는 애초부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론에 무릎을 꿇었어요. 하지만 마늘 수입비용을 왜 석유화학 및 휴대폰 업계가 부담해야 했는지에 대해선 지금도 명확한 논리적 근거가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정부 관계자) 정부는 이어 2001년 4월14일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수입비용을 농산물가격안정기금(농림부)과 휴대폰업계(정통부), 폴리에틸렌업계(산자부)에서 3분의 1씩 부담하는 방안과 수입된 마늘을 국내 시장에 풀지는 않는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4월21일 중국측과 합의문에 서명, 2차 마늘분쟁을 가까스로 해소했다.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업계는 결과적으로 '수출을 열심히 한' 죄 아닌 죄 때문에 정부의 협상 잘못으로 초래된 수입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중국과의 마늘협상에서 정부가 정해진 관세 할당량에 대한 수입 이행을 약속함으로써 벌어진 이같은 비용 조달 문제는 지금도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2001년도 마늘 미도입분 1만2천5백t을 어떤 형태로든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농림부는 "우선 농안기금으로 마늘을 수입한 후 나중에 재정에서 충당할 방침"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마늘 매입가격 약 90억원을 농안기금에서 먼저 꺼내 쓴 뒤 매각에 따른 손실액 만큼을 정부 예산으로 돌려받겠다는 얘기로 그나마 업계 분담 요구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마늘 수입은 올해 예산에 반영되지도 않은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을 장담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농산물의 가격조절과 생산, 출하 등을 장려·조정하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된 농안기금으로 수입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농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여기다 올해 민간부문에서 도입해야 하는 물량 2만2천2백67t(정부 도입분 1만3천1백81t은 별도)도 전량 소화되기 힘들 것으로 보여 추가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렇듯 한.중 마늘협상은 명분은 명분대로 실리는 실리대로 모두 잃어버린 협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당초 국내 농가 보호를 위해 중국산 마늘 수입을 줄이려던 계획은 오히려 3만2천∼3만5천t을 올해 말까지 수입키로 하는 족쇄로 바뀌었고 정부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기한도 당초 2003년 5월 말에서 올해 말까지로 5개월 단축됐다. 여기다 협상 실패에 따른 책임과 비용 부담이 정부에서 민간에 전가됐다. 또 '한국은 힘으로 밀면 밀린다'는 식의 나쁜 전례를 남기게 된 점도 뼈아프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