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현지인을 만나면 그들은 내게 먼저 북조선 사람이냐, 남조선 사람이냐를 물었다. 당시 중국에서 만나는 우리 민족은 대부분이 북한 국적이었다" 80년대 후반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던 한 기업가의 회상이다. 당시 중국은 홍콩을 경유해 3일 걸려서야 밟을 수 있었던 낯선 땅이었다. 동북부 조선족 거주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음식점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우리말을 쓰는 사람을 간혹 만나기라도 하면 조선족이거나 북한 국적이었다. 올해로 한.중 수교 10년. 92년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인 수교를 결정한 이래 양국 교역품은 유연탄에서 디지털TV로 바뀌었고 통신수단도 텔렉스에서 E메일로 달라졌다. 투자 및 교역 액수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89년 법인설립 사전 작업을 위해 상하이를 방문했던 전 삼성물산 관계자는 "92년 다시 찾은 상하이는 3년만에 확 바뀌어 있었다. 한국인을 길에서 간혹 만날 수 있었고 한국인들을 위한 가라오케며 음식점같은 상권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투자 액수와 건수도 수교를 계기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한국이 91년까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총 6천5백만달러. 이 금액은 수교후 8년간 연평균 6%씩 불어나 작년 12월말에 50억달러를 돌파했다. 누적 투자 건수도 91년 1백건에서 2001년에는 5천8백54건으로 늘었다. 교역량도 마찬가지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중국에 2백억달러어치를 수출할 전망이다. 수입을 포함한 총 교역액은 3백45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전만 해도 양국간 교역액은 미미했지만 중국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3대 교역 대상국로 부상했다. 이같은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기업인들이다. 특히 수교의 물꼬를 튼 것도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 상사맨들이었다. 공식적인 한.중 수교는 92년 체결됐지만 상사맨들은 80년대 중반부터 홍콩을 경유해 유연탄 등 광산물과 콩 옥수수 등 농산물을 사오고 섬유 원료를 파는 제3국 교역을 하고 있었다. 수교를 전후해서는 품목을 늘려 전자부품을 가지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수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후에는 전자제품을 팔았다. 삼성물산이 상하이에 삼성그룹 최초의 법인을 설립한 것은 92년이지만 베이징에는 홍콩 투자자의 명의로 된 연락사무소가 80년대 중반부터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공공연한 비밀로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도 삼성 소속인 것을 알고 묵인했을 정도다. 그러던 삼성그룹은 지금까지 18억달러를 중국에 투자해 현재 20개가 넘는 법인에 2백50명의 주재원을 포함, 총 3만3천명의 인력을 보유하게 됐다. 중국 진출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현지에서 8천만달러가 넘는 광고비를 집행했고 37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한국 가수 초청 콘서트를 열고 애니콜을 인기 브랜드로 성장시켜 한국 패션과 노래가 유행하는 한류(韓流)열풍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지난 90년 LG상사가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대륙을 밟은 LG그룹은 현재 주재원 4백명에 총 인원 1만8천명을 거느리고 있다. LG그룹에서 대륙 투자를 주도한 LG전자는 93년 설립한 후이저우 법인을 시초로 현재까지 21개 법인을 설립해 운영중이다. 이처럼 한국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대륙에 진출해 몸집을 불려 왔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라는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으로써 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철폐 등의 변화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LG전자지주회사 노용악 부회장은 올해 중국 시장에 대해 "유통 변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수입 완제품의 시장 진입이 한층 강화되며 공급초과에 따른 가격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적자생존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 어느해보다 어려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상륙작전에는 성공했지만 전면전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