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서서히 내리막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이보다 더욱 슬픈 일은 일본 사람들이 이를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걱정은 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경제전문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5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일본의 현재 상황을 '일본의 슬픔--작동하지 않는 국가'라는 제목으로 다루면서 진단한 내용이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 성장 재개의 조짐을 보이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며 유럽경제가 올해 얼마나 강한 성장세를 보일 것인지, 이 성장이 전세계를 지난 90년의 교역과 투자흐름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지만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코노미스는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일본은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토론의 대상은 오직 일본의 경기침체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깊게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 뿐이라고 이 잡지는 말했다. 관대한 사람들은 일본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덜 관대한 사람들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위험이 될 것으로보고 있다고 잡지는 말하고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단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만나는 오는 18일 미국측은 외교적인 언사를 동원해 일본에 경제개혁을 촉구할 것이고 일본정부는 개혁이 진행중이며 문제가 해결되고 있고 새로운 조치들을 검토중이라고 주장할 것이지만 이같은 주장은 거짓이라고 잡지는 말했다. 잡지는 일본의 개혁은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새로운 조치들은 과거 조치들과 마찬가지로 별 진전을 이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은 느린 그리고 아직까지는 점잖은 내리막길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아마도 가장 슬픈 일은 이것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하고 일본 흥망성쇠의 전환점은 지난 90년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시작됐으며 지난 90년대 중반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공채발행이 경제성장을 지속시킬 능력을 상실하면서 굳게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들어서면서 환영을 받은 것은 그가 내건 "자민당을 변화시키자, 일본을 변화시키자"는 슬로건이 진정한 문제는 자민당 내부의 반대라는 것을 이해한듯 했기 때문이었으나 지금까지 그는 문제에 해결에 실패했고 따라서 눈에 띄는 개혁을 해내지 못했으며 그의 온건한 시도들은 봉쇄당했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잡지는 말했다. 지난달 인기있던 다나카 마키코 외무장관을 경질함으로써 그의 인기는 급락했고 이로 인해 총선을 실시하고 이를 개혁에 대한 사실상의 국민투표로 삼는다는 그의 숨겨논 카드 마저도 그 효력이 의심스러워졌다고 잡지는 말했다. 당내 파벌들은 변화가 자민당에 표를 던지거나 자금을 대는 이익집단들을 위협한다며 민영화, 은행 구조조정, 행정개혁, 규제완화 등 고이즈미의 정책들을 가로막고 있고 이들은 또 개혁이 일반 국민에게도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잡지는 말했다. 유권자들은 원칙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사람을 좋아하겠지만 이것이 고통을 초래하는 실제 정책으로 시행될 때는 자연적으로 멀어진다고 잡지는 말하고 보수세력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인기가 있는 동안은 잡아두되 그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적인 정치세력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길고 느린 내리막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한때 힘차게 발전하던 나라에는 슬픈 일이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잡지는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내리막에서의 생활은 결코 나쁘지 않다며 공공서비스와 인프라도 좋고 국민은 풍족하며 가계도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혁으로 가는 길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고 잡지는 말하고 일본의 병은 한가지 해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엔화 하락도, 일본은행의 통화팽창정책도, 재정개혁도, 은행 국유화도, 민영화도, 규제완화도, 부실기업의 대량파산도 혼자서는 일본 경제를 생산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없다고 잡지는 말했다. 일본 정부는 수요를 되살리고 민간부분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으며 소비심리를 재건하기 위해 수년간에 걸쳐 이 모든 것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잡지는 말하고 그러나 이 모든 조치들은 여러가지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본은 내리막을 다소 우아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럭저럭 넘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잡지는 전망했다. 일본 국민이 "실망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찾을 때에만 상황은 달라질 것이며 이 능력은 은행예금이나 공채시장 붕괴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저축에 대한 불안이 생겨 아르헨티나 국민이 냄비를 들고 했던 것과 같이 변화를 강제하거나 아니면 총선을 통해 보수세력들을 쫓아내는 경우에 생길 것이라고 잡지는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현 상태로는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며 진정한 개혁 없이 엔화를 절하하려는 노력은 중국 등 이웃나라들과의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일본 경제가 앞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간에 걸쳐 정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