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이 없습니다. 주먹구구식 대충대충 계산이 있죠. 더 심한 것은 감(感)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삼성그룹 모계열사 협상교육 담당 강사 P씨) P씨는 우선 국내에 제대로 된 협상교육이 없다고 강조한다. 감에 의존하는 수준이다보니 협상의 전략과 전술을 논한다는 자체가 무리라는 분석이다.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구사하는 협상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교육과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대학이나 그보다 한 단계 심화된 과정인 경영학석사(MBA) 같은 학교교육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에는 실무교육조차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대외관련 업무가 끊이지 않는 정부 등 공공부문에서는 왜 체계적인 전략가를 키우지 못하는가. "공공부문에서는 대외협상 담당자를 장기근무자로 유도해 내지 못한다. 조금만 더 비용을 투입하면 '국제적 인물'로 키워낼 수 있는데 그게 안된다. 국제적 감각도 없이 하루 아침에 협상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에서 빠지면 그만큼 정보에서도 뒤처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제 흐름을 잘 모르면 뉴라운드와 같은 다국적 협상에서는 협상의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중하위직 등 실무자들을 국제무대에 많이 내보내 '워킹 그룹(실무집단)'에 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컨대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어 독일어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서울대 이달곤 교수) 더구나 경제가 국제화되면서 지금까지는 순수 국내업무로 분류돼 왔던 직군도 국제적 감각의 보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농림부 축산국장 자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한우키우기, 돼지 거세 정도나 챙기는게 주업무였지만 무역장벽이 철폐되고 육류시장이 개방되면서 이 자리는 점차 국제업무 관련 보직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외 접촉이 빈번해지고 직접 협상장에 나가야 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나 농림부 담당자들이 과연 미국 호주 등지의 축산업자와 해당국 대표들과 직접 만나 전략적 개념에 입각한 협상 기회를 가져 왔는지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투신과 AIG 협상에서도 전략 전술의 부재, 교육 부재는 그대로 드러났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사안인 만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부내 유관부처끼리,그리고 정부와 현대측이 함께 전략을 모색하고 또 협상과 관련한 사전 교육기회를 가졌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적임자에 대한 검증, 협상에 대한 사전 교육, 협상전략에 대한 공동토론이 생략된 상태에서 '운나쁘게' 협상장에 끌려나가는 일조차 비일비재하다. 협상장에 나가야 하는 담당자부터가 '어쩌다 협상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이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접근하고 있는지, 실제 계약 성사를 염두에 둔 접근인지부터를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게 되기가 다반사다. 현대투신-AIG 협상에서도 그랬고 대우자동차-GM이나 하이닉스-마이크론 협상에서조차 이런 상황은 되풀이된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