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한 곳일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게 일반적이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정치적 영향력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투명성이 결핍되면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하게 된다. 그 이득을 얻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되는 이른바 ''지대추구형 사회(rent-oriented society)''가 된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인력과 비용의 낭비를 초래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를 가져오는 핵심 요인이 된다. ◇ 한국의 부패 현황 =한국 경제의 고비용 구조에는 뿌리 깊은 부패가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4.2점(10점 기준)으로 비교 대상 91개국 가운데 42위로 조사됐다. 같은 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부패지수도 3.4점으로 49개국 중에서 28위였다. 세계 11∼12위인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부패 정도는 심각한 후진국 수준이다. 부패를 발생시키는 여러 요인 중에서 정부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IMD가 발표한 한국의 투명성 지수는 4.1점으로 49개국중 36위로 낮게 나왔다. ◇ 부패와 경제성장의 관계 =독일 TI의 부패지수와 각국 경제성장률간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면 의미있는 결과가 나타난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에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패가 순기능을 갖기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경제의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관료들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정부의 과잉 규제나 악법을 우회케 함으로써 오히려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부패가 시장기능을 마비시키고 투입 비용을 넘어서는 손실을 가져옴으로써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접어들 때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위기 상황을 맞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적으로 일본을 들 수 있다. 홍콩의 경제전문지인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 최신호(17일자)는 일본은 각종 게이트와 조직폭력에 의해 발생한 부실 채권을 처리하지 못함에 따라 90년 이후 10년 이상 ''게이트 리세션'' 혹은 ''야쿠자 리세션''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은 어떤가 =JP모건 증권은 지난해 우리 국민소득이 1만76달러로 1997년 이후 4년만에 1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경우도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부패가 경제성장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대부분의 국제기관들은 김영삼 정부시절 우리나라가 당한 외환위기도 심한 부패가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으로 꼽았다. 부패는 외국인 투자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패구조에서는 불필요한 영업비용을 높이게 돼 투자의 신규 유입을 억제할 뿐 아니라 기존 투자기업도 다른 나라로의 탈출을 모색하게 된다. 이런 결과는 우리나라가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경제 각료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청렴도 도덕성을 회복하는 과제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