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들이 기로에 서 있다. 정부의 보호와 독점적 사업권을 바탕으로 한 철옹성이 하나하나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개혁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민영화와 경영혁신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공기업들을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모는 상황이다. 경쟁자들은 높은 기술력을 앞세운 국내외 민간기업들이다. 이들은 민영화의 대세를 타고 높은 기술력을 앞세워 공기업의 독점적 영역에 거침없는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부도 더이상 공기업 편을 들 수 없게 됐다.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공기업을 몰아치는 감시자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기업 스스로도 변화에 대한 요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온갖 경영혁신 방안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다. 노조의 반발이 그렇고 기득권 포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이같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서둘러 주인을 찾아주는 것과 더욱 강도 높은 경영혁신 뿐이다. 올해 공기업들은 민영화와 수익경영을 통해 이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민영화 =정부가 대형 공기업들의 민영화를 추진한지 3년여가 지나고 있다. 민영화가 완료된 대형 공기업은 포항제철 대한송유관공사 한국중공업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등이다. KT(옛 한국통신) 한국전력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지역난방공사 등은 주인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KT는 정부 지분을 일반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올 상반기중 민영화될 예정이다. 한전은 발전부문 5개 자회사의 분할 매각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담배인삼공사는 정부와 은행이 갖고 있는 지분을 국내외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지역난방공사는 국내 증시 공모를 통해, 가스공사는 도매부문을 3개 자회사로 분할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게 된다. 이밖에 정부는 한전기공 한국전력기술 파워콤 등 공기업 자회사들에 대한 민영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경영혁신 =올해 공기업들이 화두로 내걸고 있는 것은 ''고객서비스 체제의 확립''이다. 그동안 독점사업권이라는 바탕에서 성장해온 공기업들이 경쟁체제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생존의 원칙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필수조건인 ''수익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조직운영과 사업방향 모두 고객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경영의 효율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은 공기업이나 일반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효율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주인이 나타날리 만무하다. 이같은 전제 아래 그동안 인력 감축, 퇴직금 누진제 폐지, 유급휴가 축소 등 하드웨어 개선에 치중해 왔던 공기업들은 올해는 소프트웨어 개선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우선 조직슬림화와 함께 핵심역량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한편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고 외부인들로 구성된 열린공기업위원회를 활성화해 경영감시 시스템을 강화키로 했다. 또 전자조달의 확대 등을 통해 효율적 예산집행을 달성하고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하는 등 주먹구구식 경영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각오다. 걸림돌 =그러나 이같은 혁신에 장애요인도 만만치 않다. 우선 내부의 저항이 문제다. 각종 복리후생의 축소와 인원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또 고위 공직자 출신들의 퇴직 후 일자리가 축소되는 것에 따른 정서적 반감도 개혁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는 만큼 국회가 개혁을 위한 뒷받침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공기업 개혁은 이제 단순한 구조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차원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현명한 절충점을 찾아내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