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D램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물량 부족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되면서 가격은 둘째치고 물량부터 많이 달라는 PC업체들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을 부르는 대로 수요 업체들이 따라오고 있다"고 요즘의 시장 분위기를 전한다. 지난해 가격이 폭락해 D램 업체들이 아우성치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D램 업체들은 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되찾았다. 그동안 현물시장 가격을 겨우 따라가던 고정거래 가격이 현물시장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12월말부터 2월까지는 전통적 비수기인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가격상승 현상이 벌어져 D램 시장이 조기에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통합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물량부족 우려 고조 =최근 D램 가격상승은 제조업체들의 공급물량 조절과 수요 증가가 맞물려 발생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조업체들은 암묵적인 합의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해 7월 이후 미국 유진공장 설비를 고도화하기 위해 가동을 중지한 상태다. 또 가격 폭락이 계속되자 일본 D램 업체들은 사업 포기를 잇따라 선언하고 장기간의 연휴에 들어갔다. 일본 업체들의 D램 공급축소 효과는 1백28메가 기준으로 5백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극심한 불황을 겪으면서 D램 메이커들이 D램 재고를 최소한으로 보유하고 있는 점도 최근 공급 부족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예상외로 증가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한 관계자는 "PC 대수는 크게 늘지 않았지만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CPU(중앙처리장치)로 속도가 빠른 펜티엄4의 사용이 늘고 있는 데다 새로운 PC 운영체제인 윈도XP가 최근 시판된 점도 D램 수요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기존 제품에 비해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펜티엄4의 경우 그래픽용 메모리를 별도로 장착하도록 돼 있어 D램 수요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중.저가 PC의 70∼80%가 그래픽 메모리를 달지 않았으나 이제는 별도 메모리를 장착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D램 수요증가 효과가 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게임기와 휴대폰 등에도 D램을 장착하는 수요처들이 생기면서 D램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 당분간 오름세 유지 =현재의 가격 오름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소한 바닥권은 완전히 벗어났으며 과거처럼 일시적인 반등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증권의 임홍빈 테크팀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거래량을 수반한 가격 상승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공급업체가 급격하게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 한 D램 가격은 견조하게 상승하거나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D램 업체의 가격인상 의지가 확고하고 PC이외의 D램 수요가 견조한 점을 상승 배경으로 꼽았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합병 추진이 D램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대우증권의 정창원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D램 사업부를 인수하면 삼성전자-마이크론(하이닉스 도시바)-인피니언(대만 업체) 등 D램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80%에 달하는 과점체제로 바뀌게 돼 D램이 고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